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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행후기-18-20180602-노르웨이-오슬로-칼 요한스 거리-오슬로국립미술관

HIIO 2023. 7. 23. 16:39

10:30 시청사를 떠나 우리는 오슬로 국립미술관으로 이동한다.

오슬로의 칼 요한스 거리에 있는 1899년에 세워진 노르웨이 국립극장(Nationaltheatret)을 지난다. 극장의 좌측에 전속 작가로 일했던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동상이 있고 우측에 초대 국립극장 장인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Bjørnstjerne Bjørnson)의 동상이 있다. 헨리크 입센은 극장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기도 했다.

국립극장 광장에는 노르웨이 작곡가인 요한 할보르센 (Johan Halvorsen)의 동상이 서있다. 오슬로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칼 요한스 거리 (Karl Johans Gate)를 지나는데 모서리에 있는 건불은 랜드마크인 GRAND HOTEL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묵는 곳 이란다.

 

위쪽을 보면 오른쪽에 오슬로대학의 법학부 건물이 보이고 언덕 위로 노르웨이 왕궁(Det Kongelige Slottet)이 보이는데 1849년에 완성된 칼 14세 요한(Charles XIV John, 1763 ~ 1844)국왕을 위한 왕궁이다. 왕궁 앞에 그의 청동 기마상이 서있고 현재 국왕 현재 하랄 5세(Harald V)의 관저로 사용하고 있다.

칼 요한 국왕의 이름을 딴 칼 요한스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랜드호텔 맞은 편 작은 분수 공원이 있다. 분수대 끄트머리에 헨릭 베르겔랜드(1808-1845 Henrik Wergeland)의 동상이 있는데 그는 시인으로서 노르웨이의 독립과 인권운동을 한 인물이다. 분수공원에 있는 조각 작품들을 보며 이동한다.

 

분수공원을 지나 좀 더 가면 좌측으로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이 보인다.

1842년에 지어진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은 우리가 보고 온 후 2022년에 새로 지은 국립박물관에 합병되었다.

미술관 앞 화단에 조각상들이 세워져있는데 먼저 보이는 것은 쇠망치 든조각상(Volund Smed)으로 1873년에 완성된 노르웨이계 덴마크 조각가 스테판 신딩(Stephan Sinding, 1841-1922)의 작품이다.

그 옆에 품안에 사람을 안은 좌상(Mann og Kvinne 1905)은 노르웨이에서 제일 유명한 구스타프 비겔란드(Gustav Vigeland)의 작품이고 그 옆의 거지같은 남자의 조각상(Tarnpeter)은 노르웨이 조각가인 롤프 룬데(Rolf Lunde)의 1927년 작이다. 피에타 조각상(Pieata)은 독일의 조각가 게오르크 콜베(Georg Kolbe)가 1930년에 만든 것이다.

벽에 전시행사를 알리는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며 좀 허접해 보이는 국립 미술관 출입구로 들어가는데 국립미술관 관람은 무료이다. 어쩐지 일정에 넣었더라니~~~ㅋㅋ 그래도 덕분에 눈호강을 하게 됐다.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되어있는데 계단 중간에 조각상이 서있다. 르느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1914년 작품인 승리의 비너스(Venus Victrix)가 우리를 맞는다.

전시실로 들어가 처음 만나는 작품은 몽크(Edvard Munch)의 1889년 작품인 봄(Vår)인데 169.5 x 264.2cm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로 몽크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다. 봄이라는 제목에 병이 든 듯 수척해 보이는 소녀가 대조적이다. 몽크는 1863년 헤드마르크 뢰텐에서 태어나 1944년 오슬로에서 사망했다. 

그 옆에 크로그(Christian Krohg)의 작품 Stuggle of Survival(생존을 위한 투쟁)이 보인다. 1888-89년 작품으로 노르웨이가 어려웠던 시절을 그렸다.

아이슬란드 태생의 탐험가인 레이프 에이릭손(Leiv Eiriksson)이 아메리카를 발견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 보이는데 역시 크리스티안 크로그의 1893년 작품이다. 그림 Leiv Eirikson Discovering America는 미국 시카고세게박람회에 전시되기도 했다. 콜롬버스보다 400년 먼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주장이다.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노르웨이 화가인 아르테 에클랑(Arne Ekeland, 1908~1994) 의 작품 <The Last Shots>이 보인다. 자본주의 붕괴를 바라는 사회주의 화가의 작품이다. 

그림들을 보며 다음 방으로 넘어가니 풍경화들이 전시된 방이 나오는데 요한 크리스티안 달의 풍경화들이 있는 방이다. Johan Christian Dahl(1788-1857)의 달빛 아래 라르비크 항구(Larvik havn i maneskinn)1839년 유화로 그린 작품이다. 그는 노르웨이 최초의 위대한 낭만주의 화가이자 노르웨이 회화의 "황금기"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발드레스의 옐레에서(Fra Hjelle i Valdres; From Hyelle in voldres)는 1851 작품으로 발데라스의 옐레의 전망이라는 뜻이다. 발데라스는 노르웨이 중남부의 전통적인 지역이다. 미술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위키에서 검색해 본 색감이 달라서 좀 낯설다.

다른 쪽 벽으로 돌면 보이는 그림은 슬린데비르켄(Slindebirken)으로 요한 크리스티안 달의 제자인 토마스 펀리(Thomas Fearnley, 1802-1842)의 1839년 작품이다. 슬린데비르켄은  송(Sogn)의 Indre Slinde 농장에 서 있던 자작나무인데 1874년 폭풍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역시 펀리의 1837년 작품인 콩스베르그의 라브로 폭포 (Labrofossen ved Kongsberg)가 옆에 있다.

그리고 토마스 펀리의 그린델발트 빙하(Grindelwaldgletscheren)는 스위스 베른 주의 빙하를 묘사하고 있는데 1837쯤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Christian II의 Torben Oxe에 대한 사형 선고에 서명(Christian II undertegner dødsdommen over Torben Oxe)은  엘리프 피터슨(Eilif Peterssen)의 1875년 작품이다. 코펜하겐왕이 Dyveke Sigbrittsdatter 의 독극물 살인 혐의로 왕의 경비병의 사형에 대한 서명을 요구하는 신하와 만류하는 엘리자베스왕비를 묘사한 것이다. 왕에 대한 음모를 꾸미는 귀족과의 대립을 그린 작품으로 빨간 망토를 입고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남자는 요한 아르침볼두스라는 귀족이다. 엘리프 피터슨은 풍경과 초상화를 주로 그린 노르웨이 화가이다. 

 

그림을 훑어보며 다음 방으로 이동하면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1880년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Tenkeren)이 있다. 원작은 로댕미술관의 정원에 있으며 파리미술관이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한 지옥의 문을 제작할 때 만들어진 조각이다. 옆에 그의 1890년 작품인 신들의 전령, 아이리스(Iris, gudenes sendebud)가 있다. 옆의 벽에는 오귀스트 르노와르(Auguste Renoir)의 1883년작인 목욕후(Etter badet)라는 작품이 보인다. 르노와르는 여성의 육체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특출난 표현을 선보인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이다.

이동하다 에드바르드 뭉크와 마네가 그린 작품들을 만난다. 라파예트 거리(Rue Lafayette)는 뭉크(Edvard Munch)가 1881년에 그린 그림이다. 프랑스 파리의 라카예트가를 점묘법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옆에 역시 프랑스 파리의 1867년 만국박람회 풍경 (View of the 1867 Exposition Universele)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에두와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가 1867년에 그린 작품이다. 두 그림의 분위가 비슷하다.

그 옆에 두상 조각은 프랑스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이 제작한 어린아이 두상(Head of Child)이다. 그녀는 1884년경 로댕의 아틀리에에서 조수로 일하게 되고 이후 로댕과 연인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로댕과 결별하고 독립해서 조각을 하다 정신병원에 갇혀 살다 죽었다. 예술가들은 왜 이렇게 사는건지~~~

 

두상 조각 앞에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 두 점이 보인다. 1890 대에 그린 아침의 욕실 (Morgentoalett)과 1875 쯤에 그린 강아지와 여자(Kvinne med hund)이다. 드가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로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일컬어지지만 본인은 사실주의 화가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어서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의 1883년 작품인 엄마와 아이(Mor og barn)가 나온다.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옆에 역시 그의 1881년 작품인 병든 소녀(Syk pike)가 있다. 사실주의적인 작품으로 크로그의 여동생이 병으로 죽은 상황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근처에 쥘 바스티앙-르파주(Jules Bastien-Lepage)의 1881년 작품인 피곤한 여인(Trett : Weary)이 있다. 프랑스 화가인 르파주가 밭에서 일하다가 힘들어서 연장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옆에 노르웨이 화가 에리크 베렌시올(Erik Werenskiold 1883-1885)의 작품 두 점이 있다. 앞은 농민의 장례식(En bondebegravelse)이고 뒤는 1883년 작품인 9월(September)인데 노르웨이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가 예쁘게 보인다.

그리고 크리스티안 크로그의 유명한 작품이 나오는데 1885에 시작하여 1887에 완성한 경찰의사 대기실의 알베르티네 (Albertine i politilegens venteværelse)라는 작품이다. 크리스티안 크로그는 화가이면서 소설가였는데 그의 소설 알베르틴(Albertine)에 나오는 장면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가난한 여자 재봉사인 알베르티네가 부패한 경찰관 윈터에 의해 강간을 당하게 되고 경찰은 그녀를 매춘부로 몰아 버리고 그로인해 여자들이 경찰서에서 검진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당시 사회상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크로그는 이 작품때문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고한다. 그림에 나오는 politilegen은 경찰의사를 의미한다.

그 우측에 그가 그린 조사의 초상화(Jossa) 그림이 있는데 1886년 작품이다.

우리는 몽크의 방인 16번홀로 들어간다. 먼저 스페인 화가 안데르스 레오나르드 소른(Anders Zorn,  1860 ~ 1920)의 스케리섬에서(In the Skerries,1894)라는 작품이 보인다. 바닷가에 서있는 나체의 여인을 그린 작품으로 수면에 비친 빛의 효과를 서정적으로 잘 표현한 그림으로 스케리는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이다. 역시 스웨덴의 화가 외젠 얀손(Eugene Jansson)이 북유럽 밤의 쓸쓸함을 푸르게 표현한 폭풍우치는 밤(Storm, aften)을 만나는데 1898년 작품이다.

 

그림을 훑어보며 지나가다가 빨간 모자를 쓴 여인의 초상화를 만나는데 크리스티안 크로그가 그의 아내 오다를 그린 그림이다. 화가 오다 크로그(Maleren Oda Krohg)는 Christian Krohg의 1888년 작품이다.

그리고 뭉크(Edvard Munch)가 1890년 파리 교외의 Saint-Cloud에 거주하면서 그린 그림이 보이는데 그는 세느강의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카페 위층을 임대했다, 당시에 그린 생 클라우드의 밤(Night in Saint-Cloud)은 1890년 작품이다. 그리고 1895년 노르웨이 해안의 달밤을 단순화하여 달빛을 그렸는데 달빛(Måneskinn)이라는 작품이다.

이어서 뭉크가 그린 엄마와 딸과 다리위의 소녀들을 본다. 엄마와 딸(Mor og datter)은 1897경의 작품이고 다리 위의 소녀들(Pikene på broen)은 1901경 작품으로 오슬로 피요르 주변의 풍경을 묘사했는데 소녀들 등 뒤의 경치를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백야(White Night)는 1900 - 1901에 그린 작품으로 노르웨이의 풍경화를 그린 몽크의 시선에 따라 비쳐지는 가문비 나무의 정경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뭉크가 성모 마리아를 그린 마돈나(Madonna)1894년 작품으로 뭉크는 종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에 초점을 맞추어 그렸다고 한다. 
이제 뭉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절규까지 왔는데 그림 앞에는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절규는 사람이 좀 빠지면 보기로 하고 절규 앞에 우울이라는 작품을 먼저 본다. 뭉크의 작품 우울(Melankoli)은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남자를 묘사한 그림으로 1892경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만화의 주인공 짱구처럼 뭉크의 특징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다름 그림의 제목 Aske(Ash)는 재인데 사랑이 불길에 휩싸이면 재가 된다는 그림이다. 머리를 감싸고 돌아앉은 남자와 허망한 듯한 표정의 여자가 대비된다. 그림의 배경이 방인데도 그 뒤로 보이는 나무들은 뭔가를 빨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1894~95년에 그린 이 작품은 상징주의 화가의 작품을 잘 대변하는 듯 하다. 설명을 들으면서도 이해가 잘 안되는 이 느낌은 뭐지???

뭉크가 20대 중반인 1894년 경에 그려진 사춘기(Pubertet)라는 작품이 나오는데 이때 그는 인상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소녀 뒤로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사춘기 소녀의 불안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때부터 상징주의 화풍이 조금씩 가미되고 있었던 것 같다. 쇄골 부분의 세밀한 묘사가 실제 모델이 되는 소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원래 그림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뭉크가 후에 원본가 같게 다시 그린 작품이다.

이제 뭉크의 가장 유명한 1893년 작품인 절규(Skrik)를 본다. 날씨 좋은 날 호숫가를 친구들과 산책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하늘이 피빛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고 뭉크가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과 공포에 절규하는 모습을 그렸다. 뭉크의 절규는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자 우리 시대의 모나리자라고 부르는데 다빈치가 평온과 자제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을 그렸 듯이 뭉크는 불안과 불확실성 시대를 정의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상징주의 미술 에서 20세기 표현주의 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1892년 뭉크는 해질녘의 아픈 기분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을 발전시킨 것으로 배경과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주인공이 바뀌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그림이라는 설명이다.

 

절규 바로 우측에 삶의 춤(Livets dans: Life's Dance)은 1899년에 시작해 다음 해 완성한 그림으로 흰색의 순진함, 빨간 옷의 관능, 검은 옷의 고뇌를 복잡하게 비유하는데 춤추는 남자가 뭉크이다. 다음에 그림 두 점이 나란히 보이는데 우측은 뭉크의 여동생을 그린 초상화인데 1892년 작품인 검정과 보라색 옷을 입은 여동생 잉거(Inger in Black and Violet)이다. 그 좌측에 1885년에 그린 아픈 아이(Det syke barn: The Sick Child)라는 작품이 있다. 누이 요하네스 소피(Johanne Sophie, 1862 - 1877)가 15세에 결핵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슬품에 잠긴 이모 카렌( Karen)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뭉크를 설명하고난 가이드는 점심식사를 하러 가자고 재촉한다. 우리는 서둘러서 작품들을 더 본다.

다음 날((Dagen derpå: The day after)은 1909년 미술관이 구입한 작품으로 모델이 매춘부라는 설과 미모때문에 마돈나라는 설이 있다.

1895년작 병실에서의 죽음(Death in the sickroom)은 여동생 소피가 결핵으로 죽을 때를 묘사했다. 문에 기댄 이가 뭉크로 보이고 뒤쪽 기도하는 이는 아버지, 초췌하게 정면을 보는 것이 여동생 Inger이다. 그녀에게 등을 돌린 남자는 형제 안드레아(Andreas)이다.

방을 이동하니 한스 헤이어달(Hans Heyerdahl)이 1887년에 그린 아스가르드스트란드에서 본 경치(View from Åsgårdstrand) 라는 그림이 있다. 그는 오슬로 남쪽에 있는 작은 포구인 Åsgårdstrand에서 그림을 그리며 보냈고 그곳에서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한 Edvard Munch에게 영감을 주었다.

 

다음 방에는 유명한 노르웨이 조각가인 구스타브 비겔란(Gustav Vigeland)의 작품들이 있다. 은둔자(The Hermit)는 그가 1898년에 만든 작품이다. 방 한가운데에는 두 남녀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춤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춤(Dance)은 그의 1896년 작품이다.

조각 뒤쪽으로 노르웨이 신낭만주의 화가 하랄드 솔베르그(Harald Sohlberg,1869년 ~1935년)의 작품 세점이 나란히 있다. 우측은 겨울의 뢰로스 거리(Street in Røros 
in Winter)로 1903년 작이다. 뢰로스는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슬로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로 뢰로스를 찾아보니 실제 사진이 있는데 그림과 너무 같아서 오히려 당황스럽다. 같은 배경의 중간 그림은 뢰로스 거리(Street in Røros)로 1902년 작품이다. 좌측에 있는 1914년작 산의 겨울밤(Winter Night in the Mountains)은 우리가 지나온 릴리함메르의 북쪽에 있는 국립공원 론다네(Rondane) 산을 그린 것이다. 

 

누드 조각상 뒤의 벽에 에일리프 페테르센(Eilif Peterssen)이 1887년에 그린 누드화가 보이는데 야상곡(Nocturne)이라는 작품이다. 야상곡 앞에 있는 여자의 조각은 구스타프 비겔란드가 1909년에 만든 작품으로 몽유병자(The Sleepwalker)이다. 야상곡 좌측에 에일리프 페테르센이 1886년에 그린 여름 밤(Summer Night)이 있다. 1886년 여름 오슬로 서쪽 크리스타냐(Kristiania) 외곽의 베룸(Bærum)에 있는 플레스컴 농장(Fleskum Farm)에서 그린 것이다.

풍경화들이 걸려있는 방을 둘러 본다. 노르웨이 화가 진 하이버그(Jean Heiberg)가 1913년에 그린 화가 루돌프 티게센의 초상(Portrait of the Painter Rudolph Thygesen)이 있는데 루돌프 티게센은 오슬로 출신의 노르웨이 화가로 뭉크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를 닮은 그림 옆에 하이버그가 1922년에 그린 스웨덴 화가 아그네스 맨하임과 시리 라츠만의 초상화(Portraits of the Swedish Painters Agnes Mannheim and Siri Rahtsmann)가 있다. 시리 라스만은 스웨덴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지낸 인물이다. 그 우측에 엄마가 보는 가운데 여동생에게 음식을 먹이는 소년의 그림이 있는데 남매(Sister and Brother)라는 그림으로 Jean Heiberg가 1930에 그린 그림이다.

 

오른쪽으로 돌면 앙리 마티즈(Henri Matisse)1905 경에 그린 프랑스 동료화가 알베르 마르케의 초상화(Albert Marquet)가 있고 우측에 그가 1908년에 그린 청동상(The Bronze Figure)이란 그림이 있다. 그가 그림보다 1년 전에 만든 휴식 1(Repose I)의 청동 조각 작품을 모델로 하여 그린 그림이다. 오른쪽으로 더 돌면 진 하이버그가 1911년에 그린 여성 누드화(Female Nude)가 있고 그 옆에 독일 화가인 에리히 헤켈(Erich Heckel)이 1910년에 그린 숲의 연못에서 목욕하는 사람(Bathers at the Forest Pond)들이 있다.

피카소가 입체파를 발전시켜 큐비즘의 표현력을 구현한 정물화를 본다. Pablo Picasso가 1927년에 그린 정물(Still Life)이라는 작품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공산주의 화가인 아르네 에클란트가 그린 복잡해 보이는 마지막 샷(De siste skudd: The Last Shots)이란 작품을 한번 더본다. 사제, 군인, 상인을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사상을 표현한다. Arne Ekeland의 1940년 작품이다. 조각 작품들이 있는 방을 둘러보는데 롤프 네쉬(Rolf Neshi) 의 조각이 있다. 아쉽게도 작품명을 확인하지 못했다.

11:40 오슬로 국립 미술관의 설립 현판을 보며 미술관을 나선다.

 

칼 요한스 거리와 오슬로 국립미술관 동영상 보기 클릭 https://youtu.be/Cv_mHdjflqA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