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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귀 - 장요원

HIIO 2024. 4. 18. 09:51

나무의 귀 - 장요원



가지마다 붙어 있던 소리들을
나선의 밑동으로 밀어넣고
새들이 푸른 귀를 찾아 날아갔다

펄럭이던 그늘보자기가
어진 나무의 소리를 다 싸서 가고
가끔 햇볕의 뼈대만 흔들리고 있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이 머플러처럼 나뭇가지를 감고,
아직 남은 몇 장의 귀가
은색의 소란을 듣고 있다

이파리들의 소임은 나무의 귀,
햇볕의 등에 그늘을 붙였다 떼는 일
바람의 행선을 알리는 일
엽록의 달팽이관에 새들의 졸음을 재워주기도 한다

은밀한 파동이 들어있는
몇 칸의 서랍이 만들어지고 있을 오동나무
햇빛 두어 채 개켜두거나 혹은,
새들의 사서함이거나 노숙하는 구름이 묵어갈 서랍들
따뜻하라고,
은색의 비닐머플러가 감겨져 있다

늙은 오동나무는 늙은 바람의 목덜미이다
무거운 귀를 툭툭 흘리고
맨몸으로 서 있는 몇 칸 서랍이지만
봄이 오면
푸른 귀들이 빼곡, 차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