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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넝쿨 - 신사 박인걸
HIIO
2025. 6. 23. 09:30
담쟁이 넝쿨 - 신사 박인걸
바람도 허물지 못한 벽이
오랜 세월 침묵으로 서 있다.
그 벽에 도전하는 잎새
미미한 연록이 숨을 고른다.
날마다 하늘 향해 기도할 때
그 음성은 바람 소리에 묻히지만
덩굴손의 빨판은 조용히
바람벽의 틈을 더듬는다.
세상은 험하고 매몰차도
그 몸짓은 언제나 위를 향했고
햇빛 달빛을 의지한 채
작은 틈마다 이야기를 남겼다.
어느 날 그 벽 위로
잎사귀들이 펼쳐지고
마침내 그 꼭대기에 닿았을 때
누구도 그 걸음을 몰랐다.
그리고 그 벽 너머 세상에
조용히 푸른 물결이 번진다.
누군가의 오래된 꿈처럼
담쟁이는 또다시 길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