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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남은 감 - 신사 박인걸

HIIO 2025. 12. 2. 09:24

끝까지 남은 감 - 신사 박인걸

찬 바람은 나무의 기억을 털어내고
저마다 계절을 내려놓은 잎들은
맨땅으로 자신을 던지며 사라져 갔다.
그런데 높이 매달린 하나의 붉은 침묵이
저문 하늘의 끝을 붙잡고 있다.

모든 감이 계절의 법칙을 따를 때
그 하나만은 중력을 부정하듯
허공을 향해 오래된 맥박을 이어간다.
그 몸짓은 마치 주름진 백발의 용기가
세월의 칼끝을 맞서는 풍경 같다.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는 듯
감은 바람의 시험을 고요로 삼고
떨어짐조차 하나의 예로 남기려 한다.
명예는 말없이 빛나는 법이듯
그 둥근 침묵은 저물수록 깊어만 간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처럼
감은 목숨보다 오래된 믿음을 품고
사나운 겨울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모두가 사라져도 끝내 남는 어떤 의지
그것이 나무가 품었던 계명의 진짜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