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이 피는 저녁
주인과 단골이 함께 늙어가는 미용실.
달궈진 고대기가 쩔꺽쩔꺽 부푼 바람을 넣습니다.
능숙한 손이 머리를 한껏 틀어 올려줍니다.
오래 적부터 전수된 저 머리,
풋내기는 감히 접근 못 할 자존심입니다.
한때 골목은 꽃과 나비가 엉키고,
화사한 한복들이 검은 승용차 반짝거리는 구두들 술청들 때
그 바닥의 근성을 꿴 저 올림머리들, 나비들을 추켜세우기도 하고
간혹 선을 넘는 그들을 노련함으로 막기도 했습니다.
이제 큰 손들은 목 좋은 남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나비들도 꽃을 따라 떠났습니다.
왕마담이라 불리던 그녀들, 세월에 뒤처지고 풀 죽은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웁니다.
탱글탱글한 웃음을 담은 푸른 방,
분꽃들이 때 이른 손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 최연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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