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910

목련 꽃 - 박인걸

목련 꽃 - 박인걸 얼어붙은 시간 끝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연다. 가장 일찍 피어 속히 사라지는 꽃 그대는 그리움의 형상 서릿발의 긴 밤을 견딘 순정한 의지로 봄을 밀어 올리는 손 꽃잎마다 묵상처럼 떨리는 사랑이 있고 꽃송이마다 눈물처럼 맺힌 정이 있다. 하늘이 세상에 내린 작은 성물 하나 땅에서 피어나 하늘을 닮은 얼굴이다.

좋은 글 2025.04.07

벚 꽃 - 김승기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벚 꽃                         김승기  말해 무엇하나요.  진실은 가슴 속에 묻어두고  늘 웃음 지어야 하는 거래요.  몇 날을 함께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래요.  한 순간 환한 웃음으로  당신 앞에 서 있기 위해  여러 날 꿈을 키웠어요.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세찬 바람 온몸을 후려칠 때  반쪽 남은 얼굴이라도 매달리고 싶은 안간힘  와르륵 떨어져 내릴 때  아픔 감추고 웃어야 하는 슬픔  알고 있나요.  떨어진 꽃잎 쓸지 마세요.  당신의 발길이 밟는 무게만큼  기쁨으로 사랑해 주세요.도로에선 가로수로, 학교에선 정원수로, 마을에선 당산목으로, 공원에 선 관상수로, 산책로에선 왕벚나무로, 들에선 올벚나무로..

좋은 글 2025.04.04

장다리꽃 - 이남일

장다리꽃 - 이남일 올봄에는 장다리꽃 홀로 핀다. 향기 없는 바람결에 흰나비 여린 날개 짓도 외롭고 꽃바람이 불어오면 꼭 그만큼만 사랑하리라던 보랏빛 눈망울도 서럽다.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이 화사한 봄꽃에 기다림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마당가에 홀로 선 할배는 먼저 간 할매의 텃밭에 마른 손길이 그리운 눈물 꽃 본다.

좋은 글 2025.04.03

목련이 피기까지 - 박인걸

목련이 피기까지 - 박인걸 깊은 어둠을 품은 가지 끝에서 기나긴 동절을 견뎌낸 한점 눈꽃이 아주 더딘 발걸음으로 봄을 향해 창문을 연다. 모두 바라보라. 인고 속에 태어나는 이 기적을 한랭이 할퀴고 간 상처에서 피어난 순백의 꽃송이와 향기를! 오랜 기다림은 눈물로 피어나고 간절한 꿈은 침묵 속에서 자란다. 시간의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 아무 말없이 목련은 기다렸다. 그분의 손길이 머문 자리마다 흰 꽃송이 피어오르고 어둔 세상 속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는 순결함으로 핀다. 사람도 마찬가지라. 고통의 어둔 겨울을 지나 믿음으로 맞이한 봄날에는 저 황홀한 목련꽃으로 피어나리라.

좋은 글 2025.04.01

꽃샘추위 - 박인걸

꽃샘추위 - 박인걸 봄이 달려오는 길목에 누구의 허락을 받고 꽃을 피우냐고 찬 바람이 매서운 손을 뻗는다. 버들강아지 연한 털을 쥐어 뽑고 산수유 고운 속살을 움켜쥐고 양지쪽 매화 향기를 헝클어트린다. 자신보다 더 고운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어 밤하늘 찬 기운을 긷고 아직 남은 잔설의 기운을 빌려 꽃잎마다 차가운 숨결로 훼방한다. 오던 봄이 깜짝 놀라 주춤하지만 어느새 땅밑에는 생명이 약동하고 어린 새싹들은 찬 서리 속에서도 잎을 틔웠다. 결국, 스러지는 것은 추위 발톱이고 꿋꿋한 것은 맺힌 꽃망울이다. 꽃샘추위여 사라지라. 피는 꽃을 시샘할수록 꽃들은 피어나고 봄은 더욱 찬란해지는 것이다.

좋은 글 2025.03.31

밤꽃향기 - 밤꽃 피는 마을 - 백승훈

밤꽃 피는 마을백승훈하얀 밤꽃이흐드러지게 핀 마을을 만나면외딴 집 문간방이라도 빌려하룻밤 묵어 가고 싶어진다 오래 걸어온 나그네의 발냄새처럼징하게 풀어놓는 밤꽃향기에밤새도록 실컷 취하고 싶다 보잘 것 없는 무지렁이 삶이라 해서한 번 쯤은 밤꽃처럼독한 향기 징하게 내지른 적왜  아니 없었겠는가 흰 밤꽃이 달빛 받아더욱 희어지는 밤이면화려한 꽃만 찾아 헤매던 나를잠시 내려놓고밤꽃 향기보다 독한 삶의 냄새에흥건히 취하고 싶다.  글.사진 - 백승훈 시인 * 밤나무 꽃 : 밤나무는 참나무 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키는 10~15M까지 자라고 6월에흰색의 꽃이 핀다. 꽃은 암수 한그루로 수꽃은 고리 모양의 긴 꽃이삭에 달리고 암꽃은그 밑에 2~3개 달려 피고 9~10월에 열매가 익는다.

좋은 글 2025.03.28

회양목 - 박인걸

회양목 - 박인걸 눈 덮인 아파트 정원을 따라 꽃샘추위 움츠리며 걸을 때 벌거벗은 회양목 가지 사이마다 보잘것없는 꽃송이 벌써 웃는다. 겨울을 머금은 잎새마다 어느 서원의 묵은 정원석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제히 제 자리를 지켜왔다. 해마다 봄이 오기도 전에 제일 먼저 피어나는 꽃송이 추위에 떨면서 지나가는 바람도 그 앞에서는 걸음을 늦춘다. 활엽수 계절 따라 옷을 바꿔도 고집스런 절개의 빛깔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은 적이 없었다. 사람도 회양목처럼 사시사철 푸르름 잃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마음 하나 품고 살지라.

좋은 글 2025.03.27

카멜리아 붉은 꽃 / 성백군

카멜리아 붉은 꽃 / 성백군아파트 출입구카멜리아 붉은 꽃, 선구자냐?뒤통수를 치는 망치냐남들 다 지는겨울에 피었다가남들 다 피는 봄에 툭,봉오리 채 미련 없이 떨어지는구나이러나저러나너는 독불장군하도 많이 당하는 일이라, 관심 없다만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에 대한그리움이 있어낙화 한 송이 주워 화병 위에 올려놓고타향살이, 이민 생활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달래어 본다.

좋은 글 2025.03.24

할미질빵 - 김승기

할미질빵 김승기파아랗게 마음 물들이우는하늘이 너무 고와서일까끝내 참지를 못하고폭폭 터지는새하얀 향기무겁게 짊어지고 어디로 가시나이까덩굴지는 세월 속에서등허리 굽었어도주름살 하나 없이 화사한 웃음,뭉게구름처럼 몽글몽글줄기마다 사랑으로 맺혔네아직은 젊은 게야오래도록 비바람 치는 세상을 살아냈더라도늙어버린 몸으로는별빛 같은 꽃을 피울 수 없는 게야그렇지, 저리도 많은 사랑을 품어 안고풋풋한 향을 뿜으며 줄달음치는 걸 보면늙은 할미는 분명 아닌 게야 * 한국의 야생화 시집 (2) [빈 산 빈 들에 꽃이 핀다]  ※ 할미질빵 :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성 활엽 만경목으로 유독성 식물이며 한국 특산식물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기슭 덤불 속에 자생한다. 잎은 마주나는데 깃꼴겹잎으로 작은잎은 난형으로 결각 모양의 톱니가 ..

좋은 글 2025.03.21

춘분일기 - 이해인

춘분일기/이해인 바람이 불 듯 말 듯꽃이 필 듯 말 듯해마다 3월 21일은파밭의 흙 한 줌 찍어다가내가 처음으로시를 쓰는 날입니다밤과 낮의 길이가똑같다구요?모든 이에게골고루 사랑을 나누어주는봄햇살 엄마가 되고 싶다고춘분처럼밤낮 길이 똑같아서 공평한세상의 누이가 되고 싶다고일기에 썼습니다아직 겨울이 숨어 있는꽃샘바람에설레며 피어나는내 마음의 춘란 한 송이오늘따라은은하고어여쁩니다

좋은 글 2025.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