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938

해당화 - 신사/박인걸

해당화 신사/박인걸할미소 가파른 바위틈에는때론 거친 강바람이 불었어도해당화 무리지어 피어날 때면첫 입마춤처럼 수줍게 웃었다.시간은 조용히 발자국을 덮고너의 그림자는 바람에 흩어졌지만그해 봄날의 눈빛이 지우지 못한한 줌 그리움이 꽃잎 위에 젖는다.한 송이 붉게 물든 내 가슴속에지금도 타오르는 이름 하나불러도 대답 없는 그 먼 어둠끝에해당화는 오늘도 불처럼 핀다.젊음은 그토록 서러워 더 빛났고사랑은 이별 속에 아픔만 남아출처 모를 바람에도 눈물지는 날엔꽃잎을 보며 나는 다시 그리워한다.

좋은 글 09:59:59

찔레꽃 아픔 - 신사 박인걸

찔레꽃 아픔 - 신사 박인걸 햇살은 고요히 들길을 덮고 찔레꽃 하얗게 무리지어 피던 때 허기진 배 움켜쥔 아이들은 맨발로 들판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볐다. 가난은 들풀처럼 자라 몸을 감았고 버즘 핀 뺨 위로 바람이 지나갈 때면 배고픔에 초점 잃은 눈동자의 아이들이 찔레순 꺾어 허기를 달랬다. 별빛에 기대 잠든 슬픈 아이는 꿈속에서 찔레꽃 따다 어머니께 드리면 되받아 아이 입에 넣던 어머니는 말없이 찢긴 하늘을 바늘로 꿰맸다. 지금도 벌판에는 찔레꽃 피어 그 시절의 고요한 눈빛을 닮고 꽃잎 사이로 스며드는 굶주림의 기억은 이따금 바람 되어 가슴을 흔든다.

좋은 글 2025.05.20

며느리 밥풀 꽃(금낭화) - 신사 박인걸

며느리 밥풀 꽃(금낭화) - 신사 박인걸 입술보다 먼저 젖은 눈동자여 밥은 식지만 진실은 남는다, 죄 없이 누명으로 목숨을 잃은 숨죽인 봄날 묻힌 곳에 꽃이 핀다. 무덤보다 먼저 묻힌 억울함에 슬픈 사연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하얀 밥알처럼 매달린 붉은 핏방울들 누가 저 입매를 본 적이 있는가. 별 없는 하늘보다 무서운 침묵 정죄보다 더 아픈 오해 바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밥풀 꽃은 해마다 목이 메어 운다.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봄은 그 슬픔을 잊지 않는다. 한 맺힌 며느리의 마지막 기도처럼 죄없이 더욱 붉게 피거라.

좋은 글 2025.05.19

자주달개비 꽃 - 백승훈

자주달개비 꽃 - 백승훈봄부터 가을까지아침마다 뜨락을 환하게 밝히는어여쁜 자주달개비는'히로시마의 꽃'으로 불립니다. 히로시마에버섯 구름이 피어나던 날청보라 꽃잎 하얗게 변해서세상에 제일 먼저 위험을 알린 꽃자주달개비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낯빛 바꾸어 나를 나무라시던자주달개비 같은 당신아침마다 사랑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글.사진 - 백승훈 시인 * 자주달개비꽃 : 닭의장풀과에 속하는 아메리카 원산의 여러해살이풀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외떡잎식물이며,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고 여러해살이 초본이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키는 50cm정도로 크고, 줄기는 1cm 정도로 무더기로 자라며 5~9월에 자주색 꽃이 핀다.

좋은 글 2025.05.16

꽃 / 김춘수

꽃 / 김춘수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좋은 글 2025.05.13

할미꽃/ 김승기

할미꽃/ 김승기이름부터 바꿀까정결한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부드러운 살결 붉은 입술아름다운 몸짓으로예쁘게 예쁘게 꽃 피우면서구충제까지 대신한 세월을 밀쳐 두고할미꽃이어야 하는가털어야지딸네집 찾아가다 눈 속에서 얼어 죽은할머니의 전설은하늘에 넋이 오른 지 오랜지난 일이야새롭게 살아야지슬픈 역사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새 바람 부는 새로운 날젊게 꽃을 피워야지 -한국의 야생화 시집 제1집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2012 ※ 할미꽃 :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유독성 식물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이나 들의 양지바른 곳에 자생하는데 특히 무덤가에 많이 자란다. 잎은 뿌리에서부터 모여 나오는데 잎자루가 길고, 5장의 작은잎으로 구성된 깃꼴겹잎이며, 작은잎은 깊게 갈라진다. 4~5월에 기다란 꽃줄기 끝..

좋은 글 2025.05.09

봄까치 꽃 - 이해인

봄까치 꽃 - 이해인 까치가 놀러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좋은 글 2025.05.08

이팝나무 아래서 - 신사/박인걸

이팝나무 아래서 - 신사/박인걸 쌀밥이 복스럽게 쌓인 듯 가로수마다 눈처럼 핀 새하얀 숨결 거룩한 속삭임이 가지마다 매달려 바람조차 조심스레 지나간다. 저토록 곱게 핀 것은 꽃이 아닌 잊힌 기도요 이름 모를 눈물이다. 햇살이 그 위에 하얗게 앉아 영혼 하나를 씻기듯 빛을 붓는다. 저토록 흰빛은 삶을 견뎌낸 표식이며 슬픔조차 경건하게 하는 침묵이다. 누군가의 임종의 말처럼 맑아 세상이 들으려 하지 않는 진실같다. 이팝나무꽃은 계절의 장례식이며 동시에 새 생명의 축복이다. 피었다는 사라지는 그 찰나에서 우리는 조금씩 사람이 된다.

좋은 글 202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