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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는_漢詩-377 ★冬夜聞蟲 - 白居易

HIIO 2024. 11. 16. 09:23

#읽어주는_漢詩-377

 

☆한시감상 ★冬夜聞蟲 - 白居易

 

蟲聲冬思苦於秋 (충성동사고어추)
不解愁人聞亦愁 (불해수인문역수)
겨울밤 벌레 소리는 가을보다 처절하니
근심 모르던 사람이 들어도 수심에 젖네.

 

我是老翁聽不畏 (아시노옹청불외)
少年莫聽白君頭 (소년막청백군두)
나는 노인이라 들어도 두려울 게 없지만
소년아 듣지 마라. 그대 머리 희어지리.

 

 

虫声--冬思--苦于秋.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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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解--愁人--闻亦愁.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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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是--老翁--听不畏.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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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年--莫听--白君头.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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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1401 백거이-동야문충-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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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828년 57세 때 장안에서 형부 시랑(刑部侍郎)을 할 때 지은 시이다. 백거이는 814년에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3년이 지났을 때 시골에 있으면서 <벌레 소리를 들으며[聞蟲]>란 작품을 쓴 적이 있는데 236회에서 소개하였다. 그 시에서는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한숨이라도 잘까 봐 가을 풀 벌레가 일부러 침상으로 파고든다는 유머를 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는데 이 시에서는 겨울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면 근심으로 빨리 늙는다는 말까지 하고 있으니 시인이 듣기에 겨울 벌레 우는 소리는 그 처절함이 필시 각별했던 모양이다.
 
‘충성동사(蟲聲冬思)’는 겨울에 풀벌레 소리를 들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심리 정서적인 반응을 의미한다. ‘불해(不解)’는 어떤 사물이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한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불해문자(不解文字)’라고 하고 한글을 모르면 ‘불해언문(不解言文)’이라 하며, 활을 잡을 줄 모르면 ‘불해조궁(不解操弓)’이라 표현하듯이, 평소 근심이라고는 모르고 산 사람을 ‘불해수인(不解愁人)’이라 한 것이다. 이런 목석같은 사람도 겨울에 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면 절로 수심이 들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백거이 자신은 이미 노인이라 머리가 다 세어 더 셀 것도 없으니 두렵지 않지만 연소한 사람들이 겨울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금세 희어질 것이 걱정되니 제발 듣지 말라고 부탁까지 한다. 물론 그 가슴을 파고드는 울음소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풀벌레 울음소리가 백거이의 귀에는 얼마나 시름겹게 들렸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백거이가 벌레 울음소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감수성도 있지만 당시 백거이가 병을 앓은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백거이는 2년 전 826년 55세 때 소주 자사로 있으면서 눈병이 나 100일 휴가를 쓰고도 제 날짜에 복귀하지 못한 일이 있다. 마침내 829년에는 병으로 중앙 정계를 떠나 태자빈객분사(太子賓客分司)라는 한직을 맡아 낙양으로 온다. 하남 윤(河南尹)을 하던 831년에도 병과 연관된 시가 있고 2년 뒤인 833년 62세 되던 2월에 50일 병가를 낸 데 이어 4월 25일에는 두풍(頭風 고질적인 두통)으로 하남 윤에서 물러나 다시 태자빈객분사로 돌아온다. 그 스스로 자신의 초상화에 “부들과 버들같은 약한 몸이라 쉽게 쇠하네.[蒲柳質易朽]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병은 또 조정의 일이 자신 뜻대로 안 풀려 과도하게 술을 마신 것과도 관련이 있다. 백거이란 이름과 자 낙천(樂天)을 보면 마치 그가 대범하고 소탈하며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하기 쉽지만, 다소 병약하고 고집이 세고 꼼꼼하고 시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의 실체에 가까울 것이다. 말년에 중앙 정계에서 멀어져 낙양에 있을 때는 불교를 믿고 환로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져 한적하고 달관적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모습을 그 이전의 시에 투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이 시를 지을 무렵에는 자신의 포부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채 몸도 그다지 좋지 않은 데에다 마음도 울울하여 수심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꾀꼬리나 소쩍새, 부엉이와 올빼미 등 여러 새는 모두 다양하게 사람의 심사를 자극한다. 원숭이 울음소리도 시에는 곧잘 나온다. 이런 울음소리는 외로운 사람에게는 그리움을, 수심에 찬 사람에게는 근심을 더욱 자극한다. 풀벌레 소리도 이와 같아서 고인들의 시문에 가을을 배경 삼아 근심을 일으키는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오열하다’는 의미의 ‘열(咽)’자가 함께 나오는 시들이 상당히 있는 것을 보면, 늦가을이나 초겨울의 벌레 소리는 특히 오열하듯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잡음이 없는 한적한 시골에 가서 깊은 밤에 혼자 있을 때 새 울음소리나 벌레 소리를 들으면 사무치고 애절한 느낌을 준다.
 
오늘 마침 이 시를 보고 저녁을 먹고 어두운 하천 길을 산책하면서 귀를 세우니 과연 풀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전부터 들렸을 것인데 별 의식이 없는 것은 내가 관심이 거기에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종일 책을 보고 일을 하다 보니 이런 풀벌레 소리를 들으니 근심은 커녕 오히려 마음의 속진이 사라지고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 끼니로 먹던 보리밥을 이제는 별식으로 먹고 고구마나 감자로 한 끼를 때우던 사람들도 이제 간식으로 먹어 예전과는 다른 맛이 나는 것처럼, 풀벌레 소리도 사람의 환경에 따라 매우 다르게 들리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