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 봄을 엿듣다 어딘가엔 어린 아이 키를 넘게 폭설이 내렸다는데 남녘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꽃소식이 올라옵니다. 눈 소식, 꽃 소식이 뒤섞인 2월의 바람 속에서 성급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노루귀 꽃은 눈을 헤치며 피어난다 하여 파설초(破雪草)라고도 부릅니다. 겁 많은 노루의 쫑끗 세운 귀처럼 꽃 진 뒤에 올라오는 잎이 솜털 보송한 노루의 귀를 닮아서 노루귀라 불리는 이 꽃은 노란 복수초와 함께 봄의 전령사 같은 꽃입니다. 겨울빛을 고스란히 간직한 숲에서 흰색이나 분홍색의 꽃잎을 펼쳐 하늘을 받쳐든 노루귀 꽃을 보면 마음까지 환해집니다. 한데 이 귀여운 노루귀꽃에겐 작은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희고, 붉은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실은 꽃받침이랍니다. 곤충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꽃받침을 꽃잎처럼 진화시킨 것이지요.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제 몸을 바꾼 노루귀꽃을 만나면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나를 바꾸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글.사진 - 백승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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