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나무 단풍 - 신사 박인걸
새벽기도 길목의 가로등 불 아래
샛노란 은행잎이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밤새 내린 눈보다 더 황홀함이
아직 덜 깬 내 영혼을 아름답게 한다.
쪽달이 밤하늘에서 웃고
별빛마저 은행잎처럼 쏟아질 때
겨울로 가는 막간의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찬란하다.
지금도 떨어지는 은행 이파리들은
결혼행진곡에 뿌려지던 꽃가루가 되고
엷은 바람에 뒹구는 잎들은
고운 사연을 담은 연서로 펄럭인다.
단풍잎, 느티나뭇잎, 플라타너스 잎이 뒤엉켜
샛노란 은행잎과 바스락거릴 때
켜켜이 쌓여온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내 가슴을 금빛 추억으로 물들게 한다.
아무도 걷지 않는 새벽길을
나 홀로 걸으며 느끼는 황홀함은
신 앞에서 체험했던 영적 환희만큼이나
내 가슴을 소름 돋게 한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핏대를 올리며 신경을 곤두세운 사람들이
이 새벽길에 은행잎을 밟는다면
아무 욕심 없이 내려놓는 잎들의 비움에서
삶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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