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채취하러 길을 나서다 - 다서 신형식
가지산 감아돌아 청도 가는 길 비탈,
밤새 뒤척이던 어둠의 음모는
한줄기 햇살같은 염화미소를 입가에 흘리고
동안거 해제일에 맞추어
도열된 펫트병 옆에 나도 선다.
하늘 향해 뚜껑 열고
눈이란 눈은 모두 다 지그시 감으면
천국으로 향하는 고무 대롱,
그 끝을 타고 봄이 내린다.
굳이 계절의 허벅지 쯤에
구멍을 내지 않아도
비는 오는 거다. 봄비는 내리는 거다.
개구리 깨어날 경칩까지라 제한하지 않아도
노란 쪼끼에 채취면허 적지 않아도
속 보이는 병 옆에 나란히 서기만하면
봄비는 오는거다.
배꼽을 지나 명치를 타고
가슴 속 깊이까지 배달되어 오는 거다.
펫트병 하나에 만원이라
굳이 써붙이지 않아도
고로쇠 액 흐를 쯤이면
비는 오는 거다.
눈 지그시 감고 입 벌리고 서면
쪼르륵, 그순간
봄은 채취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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