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박태기나무 꽃을 보면 - 김승기

HIIO 2024. 5. 17. 10:12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박태기나무 꽃을 보면 - 김승기



봄 길을 걸을 때마다
담장 옆에만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가지마다 팥알 같은 꽃을
촘촘히 달고 있는 박태기나무는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어릴 적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보릿고개의 마루턱에서
손자의 생일을 위해
열 돌을 먹어야만 무병장수한다며
십 년을 한결같이
수수경단을 만들던
쭈글했던 할머니의 손을 생각하게 한다
볼 수 없는 할머니의 얼굴이
휑한 가슴 속에서 되살아나고,
그렇게도 먹기 싫었던 수수경단의
오돌톨하게 붙어 있던 팥알들이
오늘 박태기나무 꽃으로 다시 피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닮아 가는 건 아닐까
깜짝 놀라며 진저리를 치곤 한다


※ 박태기나무 : 콩과의 낙엽성 활엽 관목으로 중국 원산인 귀화식물이며 관상수로 심는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잎은 어긋나는데 둥근 심장형으로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가죽질로서 윗면은 짙은 녹색을 띠면서 광택이 나고, 뒷면은 연둣빛을 띤다. 4월에 자홍색의 꽃이 나비 모양으로 잎보다 먼저 피는데 잎겨드랑이에 여러 송이가 모여 달리고, 화축(花軸)이 없이 꽃자루만 있다. 9~10월에 기다란 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다. 한방에서「자형피(刺荊皮)」라 하여 나무껍질을 약재로 쓴다. 흰색의 꽃이 피는 것을「흰박태기나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