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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꽃다리 / 김승기詩人

HIIO 2024. 9. 27. 09:59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수수꽃다리 

                          김승기

 



북한산 깊은 골짜기
꼭꼭 숨은 정향나무
누가 너의 씨를 훔쳐갔느냐
벌 나비 부르려고 터뜨린
그놈의 향기 때문에
어느새 도둑맞았구나

도둑맞은 씨앗
라일락으로 튀기 되어 돌아와
미군부대 기지촌 방석술집의 마담 언니처럼
요염한 자태로 진하게 화장하고
흐드러진 웃음 헤프게 팔고 있구나

잃어버린 게 어디 너의 씨뿐이랴
패랭이꽃이 카네이션 되었고
닭의장풀은 양달개비 되었으며,
참다래도 키위 되어 되돌아오고
제비꽃은 팬지로 돌아왔으니,
도둑맞은 게 한둘이어야지

사람들아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칠 생각을 않으니
언제 또 무엇을 잃을지
마음 놓지 못하겠구나

이젠 버젓이 주인 행세까지 하며
무소불위로 온 누리를 활갯짓치는 라일락
그 위세 당당한 몸짓에
기죽은 수수꽃다리의 찡그린 얼굴
수줍은 웃음이 서글프다





※ 수수꽃다리 : 물푸레나무과의 낙엽성 활엽 관목 또는 소교목으로「넓은잎정향나무」라고도 부른다. 황해도, 평안남도, 함경남도, 강원도 북부 등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산록 양지나 석회암 지대에 자생하며 흔히 관상수로 심는다. 잎은 마주나는데 심장형으로 잎자루가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의 앞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두색이며, 양면에 털이 없다. 4~5월에 연한 적자색의 꽃이 나팔 모양으로 피는데 꽃잎 끝이 4개로 갈라지고 향기가 강하며, 전년도 가지 끝에 마주나와 원기둥 모양의 꽃차례를 이룬다. 9~10월에 광택이 나고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열매가 익는다. 어린 줄기와 잎은 식용하고, 한방에서「정향엽(丁香葉)」이라 하여 잎을 약재로 쓴다. 흰색의 꽃이 피는 것을「흰수수꽃다리」라고 한다. 개화기 때에 서양 선교사가 우리나라 북한산에서 자생하는「정향나무(털개회나무)」의 씨를 훔쳐가서 개량하여 만든 것이「라일락」이며, 미군정시대에 미군장교가「정향나무(털개회나무)」의 씨를 훔쳐가서 개량하여 만든 것이「미스김라일락」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원예품종인「왜성정향」은 관상수로 심는다. 향기가 강하고 꿀이 많아 벌 나비가 자주 찾는 밀원식물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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