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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즘나무 - 박인걸

HIIO 2024. 9. 30. 10:01

버즘나무

버즘처럼 얼룩진 껍질 아래
숱한 이야기들이 깊이 숨어있어
이국의 바람을 타고 건너온
시간의 상처들이 가엽다.
우리는 그늘서 쉬지만
버즘나무는 서서히 무너지고
푸르름이 더는 젊음이 아니고
그리움만 끌어안은 늙은 나무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것은
낙엽뿐일까, 아니면 기억일까.
나무는 묻는다.
이 땅이 낯설기만 한 건
너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우람하게 뻗은 나뭇가지 끝에
닿지 못한 낮달이 떠 있고
머잖아 사라질 푸르름도
지금은 모든 것을 덮고 있다.
일렬로 서 있는 나무 아래서
나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한참을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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