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목(裸木)의 의지 - 신사 박인걸
단풍을 지운 가지마다 바람이 앉아
한 마리 새처럼 나목의 어깨를 스친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 단단한 모습에서
포기가 아닌 깊게 뿌리내린 결의가 빛난다.
한 시절 짙푸른 시간의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빈 마음으로
겨울을 받아들이는 그 당당한 표정이
어느 수도사의 얼굴처럼 거룩하다.
사라져간 잎들의 기억이 눈처럼 내려
가지 사이에 깃들다 다시 흩어지고
그 애상(哀傷)의 흔적조차 포용하며
나목은 침묵으로 자신을 견고히 세운다.
끝끝내 부러지지 않는 그 고요한 의지는
허공을 향한 미세한 떨림 속에 흐르고
비워야만 채워진다는 역설(逆說)처럼
나목은 우리에게 깊은 지혜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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