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시집 (6) [그냥 꽃이면 된다]
한겨울의 참빗살나무 퍼포먼스 김승기
亡國의 恨 서린 영혼이 잠들어있는 홍유릉
순종황제 묘역의 재실 담장 모퉁이
새빨간 열매만 주렁주렁
벌거숭이 앙상한 참빗살나무 두 그루
피 묻은 참빗으로
한겨울 헝클어진 역사를 빗질하고 있다
이제는 화석이 되어버린
그 풋풋했던 신록의 봄날
돌이켜보면 그리 먼 시간도 아닌데
어찌 회한의 통곡보다 아득한 그리움이 먼저 앞설까
화려하게 꽃 피우지 못했어도
이렇게 주렁주렁 열매 맺은 것으로 기쁘다 해야 할까
여전히 한낮이면 햇살 홀로 따사로운데
걸핏하면 한밤에 튀어나오는 일본 각료의 망언들
번쩍번쩍 섬광으로 튀어 온몸 찌르는
칼춤 바람이 어지럽다
지금은 박물관의 그림처럼 붙박여 버린 겨울
다시 새봄을 꿈꿀 수 있을까
너는 몸부림치고 있지만
참빗살 사이로 빠져나오는 충혈된 눈빛에
오소소 살 떨리는 나는
너를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슬픈 표정을 하고
깊은 겨울을 견디다 보면 새봄이 온다는
상투적인 말을 건네며
펄럭이는 춤사위마다 뚝뚝 떨어지는 피 묻은 애원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는 없다
조선이 아닌 한국이 살아있으니 맡겨두고
어서 빨리 춤판 끝내고 평안히 쉬라며
느릿한 장단가락에 어설픈 박수를 치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한겨울의 홍유릉
잠들지 못하는 영혼을 빗질하는
벌거숭이 참빗살나무 두 그루
걸팡진 오구굿 한바탕 춤판 벌이면
빗살 사이 새빠알간 열매껍질날개 위에서 우수수
버짐 먹은 겨울 햇살이 각질로 부서지고 있다
※ 참빗살나무 : 노박덩굴과의 낙엽성 관목으로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와 하천 유역에서 자생한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노목(老木)은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는데 긴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하고 둔한 잔 톱니가 있으며, 양면에 털이 없다. 5~6월에 연한 녹색의 꽃이 지난해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핀다. 10월에 네모진 둥근 모양의 열매가 붉은색으로 익는데 날개가 있어 4개로 갈라지면서 붉은색의 씨가 드러난다. 한방에서「귀전우(鬼箭羽)」라 하여 가지를「화살나무」의 가지와 가지에 달린 날개깃과 같은 약재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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