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기 /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뿌리까지 얼고 만 밤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