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던 날 - 신사 박인걸 모란이 피던 날 시간은 얼어붙고 햇살도 숨죽인 채 그 붉음을 경배한다. 가던 바람은 잠시 머물러 꽃잎에 입 맞추다 숨결처럼 스러진다. 그러나 그 찬란함은 허무를 품고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니 향기는 추억 속에만 남아 있고 시간은 아무 일 없는 듯 걸어간다. 저 먼 산에 묻힌 이름 잃어버린 시간은 흐르고 모란은 그 속에서 숨 쉬며 슬픔을 고요히 닫아버린다. 모란이 검붉게 피어나던 날 나는 그 침묵을 헤아리지 못했다. 화려함 뒤에 숨은 덧없음이 우리들 삶과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