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나무 한 그루 - 신사 박인걸 가파른 질멧재 무릎 연골이 시큰거리던 그 오르막에서 내 추억은 박달나무 그림자 아래 엎드려 있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면 숨이 가빠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서도 박달나무는 묵묵했다. 아무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내지 않는 철벽 나무는 바람을 견디고 계절을 삼켰다. 도끼는 숨을 죽였고 톱은 이빨이 부러졌다. 그 단단함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으나 쇠로 두들겨도 부서지지 않는 무엇, 나는 그것을 의지라 배웠다. 대패로 다듬잇돌을 깎던 아버지 손에는 온종일 나무의 침묵이 묻어 있었다. 밤이면 나는 그 목침을 쓰다듬었고 꿈속에서 박달나무는 내 등뼈로 자라났다. 박달나무 향을 맡을 때마다 함부로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을 배웠고 쉽게 꺾이지 않으려 휘어지는 법도 익혔다. 박달나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