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바람꽃을 아시나요
김승기
아주 世俗을 떠난 것도 아닌데,
하루에도 몇 번씩 절간 뒷산을 오르내렸어요.
얼음이 된 눈이 이제 막 녹았을까 싶은 날
동안거로 움츠린 가슴 펄쩍이는 바람 기운에
또 산을 올랐어요.
거기서 만난 꽃, 반가웠지요. 기뻤어요.
물어보았지요.
뭔 이름이 꿩의바람이냐고.
되묻더군요.
무슨 일로 이 산중에서
오래도록 세월을 애써 흘러 보내느냐고.
아차, 싶었지요.
말 못하고 쳐다만 보았어요.
빙긋이 웃으며 말하더군요.
그런 질문 수 없이 들어 이젠 이골이 났다나요.
세월의 바람에 무뎌졌대요.
그러면서 또 말하더라고요.
마음을 비웠다 비웠다 하면서도
세상살이에 부대끼다 속상하여
지금 내 앞에 섰지 않았느냐고.
흐르는 세월에 공을 들여야 한대요.
비 오면 고스란히 맞아 가며
얼음이 얼면 잎 지워 차겁게 몸 움츠리고
눈 쌓여 찬바람 부는 한겨울을
그냥 죽었다 지내고 나면,
속으로 꾸는 꿈이
싹터 잎이 나고 꽃 피는 거라고.
저절로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느냐고.
풀이며 나무들이 이파리 무성하게 내밀기 전에
높고 깊은 산에서
얄상하면서도 대살지게 피워야 한대요.
해 지면 오므라들고 해 뜨면 다시 펼치면서
향기는 있는 듯 없는 듯 바람에게 내주고
열두 장 하얀 꽃잎만 커다랗게 하늘거리는,
그렇게 세월을 공들여 왔대요.
얼굴 붉어지대요.
가슴이 환해집디다.
넙죽 절을 했지요.
그대여, 꿩의바람꽃을 아시나요.
한국의 야생화 시집 (2) [빈 산 빈 들에 꽃이 핀다]
※ 꿩의바람꽃 :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유독성 식물이다. 우리나라 각처 산지의 숲속에 자생한다. 뿌리줄기는 육질로서 옆으로 뻗는다. 줄기에서 나오는 잎은 꽃이 진 후에 자라며, 긴 잎자루가 있고, 잎은 3갈래로 갈라진 후에 작은 잎은 다시 3갈래로 갈라진다. 4~5월에 흰색 또는 겉에 연한 자주색이 도는 흰색의 꽃이 긴 줄기 끝에서 피고, 7월에 별사탕 모양으로 생긴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다. 한방에서「죽절향부(竹節香附)」라 하여 뿌리줄기를 약재로 쓴다. 원줄기 끝에 한 개의 꽃이 피는데, 꽃잎이 열두 장으로「바람꽃」무리 중에 꽃이 큰 편이고, 저녁에는 꽃이 오므라들며 해가 뜨면 다시 펴진다. 꽃이 피기 전에 뿌리에서 나온 잎은 예쁘게 긴 타원형으로 줄기 가운데에 돌려나기하며 꽃과 함께 있다가, 꽃이 진 후에는 잎자루가 길게 달리며 무성해진다.
전설
꿩의바람꽃은 학명이 Anemone raddeana Regel이듯 아네모네속에 속한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의 anemos(바람)가 어원으로 숲 속 양지바른 곳이지만 바람 부는 곳을 좋아한다. 아네모네는 꽃의 여신 플로라의 시녀였다. 플로라의 연인, 바람의 신이 아네모네를 사랑하게 되자 이에 질투를 느낀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먼 곳으로 쫓아버렸다. 그렇지만 바람의 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먼 길을 방황하던 바람의 신은 어느 황량한 언덕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아네모네를 발견하고 기쁜 나
머지 얼싸안았다. 그 광경을 본 플로라는 질투를 참지 못해 아네모네를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바람의 신은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아네모네를 어루만지며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 꽃이 지금의 죽절향부(꿩의바람꽃)이다. 그래서 이 꽃을 영어로는 윈드플라워(windflower)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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