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국 태산 여행후기 곡부-공부

HIIO 2015. 12. 24. 22:20

10시 30분, 공묘를 나와 기념품점으로 소란스럽게 장이 서있는 거리를 지나 공부(孔府)로 간다.

공부는 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살림집과 이곳을 관리하는 관청이 있는 곳인데 공자 후손이 장을 맡았다.

송나라 인종이 공자의 46대손 공종원(孔宗願)을 연성공(衍星公)으로 봉해 곡부를 다스리게 하면서 시작됐다.

연성공은 공묘를 관리하는 일종의 벼슬로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공자의 후손에게 세습되었다.

공부 입구를 지나면 첫번째 문이 나오는데 대문에는 공부가 아니라 성부(聖府)라고 현판이 붙어있어 공자의 위상을 말해준다.

첫문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두번째 문의 이름은 성인지문(聖人之門)으로 써놨다.

공부는 증개축을 거치며 궁궐 다음으로 큰 저택으로 커져서 ‘천하제일의 가옥‘이라고도 불리운다.

3번째문인 중광문(重光門)은 담에 연결되지않고 마당에 덩그라니 서있는 솟을대문으로 삼문의 형식(가운데 황제, 양쪽에 신하)으로 명나라 홍치16년(1503)에 건축하였다.

명나라 세종 주후총(朱厚熜)이 하사한 "은사중광"(恩賜重光) 현판이 붙어있는데 여기서 이름이 유래했다.

황제의 칙사를 맞거나 제를 지낼때만 열어 의문(儀門)이라 부르기도 하고 평소에는 닫아두어 새문(塞門)으로도 부른다.

김대중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열렸다고 한다.

중광문 양옆으로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工)의 육부 관청이 있다.

 

도처에 유네스코 현판이 보이는데 공묘, 공부, 공림은 1994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삼공으로 등록되었다.

중광문을 지나면 공부(孔府)의 중심 건물인 대당(大堂)이 나온다.

대당은 공자의 후손인 곡부통치자 연성공(衍圣公)이 황제의 칙사를 맞이하거나 중요한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다.

대당에 이어 이당, 삼당이 있는데 일상적인 업무는 이당(二堂)에서, 가족과 관련된 업무는 삼당(三堂)에서 본다.

대당 중앙에 연성공의 자리가 재현되어있고 주변에는 그 당시에 쓰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자 가문에서 받은 관직을 표시한 패가 보이는데 대대로 연성공에 봉해진다는 뜻의 습봉연성공(襲封衍聖公)이란 관질패(官秩牌)가 훌륭한 조상을 모신 후손들의 영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연성공은 자금성 안을 말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관직이었다고 한다.

상대쌍안화령(賞戴雙眼花翎)이라고 써진 패도 그 옆에 있다.

대당을 지나면 대당과 이당을 연결하는 복도각이 있는데 대기실 역할을 하며 각로등(阁老凳)이라는 긴 의자가 놓여 있다.

이당(二堂)은 손님을 접견하는 다실로 동쪽은 공문서 수발, 서쪽은 주로 의전을 담당했다.

이당(二堂)을 나서면 삼당(三堂)인데 그 사이에 북태호석(北太湖石)이라는 구멍이 뻥뻥뚫린 기묘한 수석이 있다.
집앞에 산이 보이는 듯한 가산석(假山石)역할을 하고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삼당(三堂)은 연성공이 집안일을 처리하는 곳이다.

한쪽에 빨래판처럼 빗살무늬가 있는 돌이 있는데 잘못한 사람을 벌주는 일종의 형구라고 한다.

3당을 나오면 여기까지 행정사무와 관련된 구역으로 전원(前院)이라 부른다.

중앙 출입문인 내택문(內宅问)이 나오는데 여기부터 살림을 하는 연성공사저에 해당하는 후원(後院)이다.

내택문은 통과하지않고 좌측으로 도는데 돌면 내택문의  문안쪽의 영벽에 그려진 계탐도(戒贪图)가 보인다.

탐은 용의 머리, 기린의 몸, 송아지의 발을 한 탑욕스러운 특이한 동물이다.

발에 8신선의 무기를 가진 탐이 태양을 먹기 위해 가는데 결국 태양에 타서 죽게 되고 만다.

탐욕의 상징이 되는 동물로 욕심을 경계하는 의미로 그려놓고 수신제가를 했던 그림이다.

공부뿐만 아니라 당시 3품 이상의 관리의 집에는 탐의 그림이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나라의 문제였던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면 여자들이 참여하는 가문의 연회 등을 치루던 전상방(前上房)이 있다.

전상방 위에는 굉개자우(宏開慈宇) 편액이 걸려있는데 "널리 열려있는 따사로운 집"이란 뜻일까....

편액 밑에는 서태후가 쓴 목숨 수(壽)자가 걸려 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서 같은거니까...

그 뒤편으로 어르신들 살던 전당루(前堂樓)와 여자들이 거주하던 후당루(後堂樓)로 이어진다.

후원에 있는 공가들이 산책하던 넓은 정원을 거쳐 나가다가 출구 근처에서에서 어느 쪽에서 보든 길이 보는 사람을 향한다는 청나라 화가의 그림을 보고 11시 10분 우리는 공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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