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멍든 수국 - 시인 박인걸 노을빛이 꽃잎에 스미던 날 너의 눈동자도 잔잔히 떨렸다. 아물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와 보랏빛 수국처럼 가슴에 멍이 들었다. 사랑은 염색되지 못한 계절 닿지 못한 입맞춤의 거리에 있다. 가까웠기에 더 멀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는 끝내 서로의 그림자가 되었다. 한 송이 두 송이 바람에 무너지는 슬픈 꽃송이처럼 망설이던 내 마음 그 안엔 아직도 너의 얼굴이 남아 있고 지울 수 없는 시간은 조용히 울고 있다. 오늘 저녁 수국 앞에 멈춰 선 나는 묻지 못한 안녕을 한 손에 들고 서 있다. 잊는다는 건 피는 법을 배우는 일 멍든 아름다움으로 나는 다시 피어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