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아래서 송수권
한껏 구름의 나들이가 보기 좋은 날
등나무 아래 기대어 서서 보면
가닥가닥 꼬여 넝쿨져 뻗는 것이
참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철없이 주걱주걱 흐르던 눈물도 이제는
잘게 부서져서 구슬 같은 소리를 내고
슬픔에다 기쁨을 반반씩 어무린 색깔로
연등날 지등(紙燈)의 불빛이 흔들리듯
내 가슴에 기쁨 같은 슬픔 같은 것의 물결이
반반씩 한꺼번에 녹아 흐르기 시작한 것은
평발 밑으로 처져 내린 등꽃송이를 보고 난
그후부터다.
밑 뿌리야 절제없이 뻗어 있겠지만
아랫도리의 두어 가닥 튼튼한 줄기가 꼬여
큰 둥치를 이루는 것을 보면
그렇다 너와 내가 자꾸 꼬여가는 그 속에서
좋은 꽃들은 피어나지 않겠느냐?
또 구름이 내 머리 위 평발을 밟고 가나보다
그러면 어느 문갑 속에서 파란 옥빛 구슬
꺼내 드는 은은한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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