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주는_漢詩-379
☆한시감상 ★新雪 2 - 陶隱 李崇仁
蒼茫歲暮天 (창망세모천)
新雪遍山川 (신설편산천)
아스라한 세모의 하늘
첫눈이 산천에 두루 내렸네.
鳥失山中木 (조실산중목)
僧尋石上泉 (승심석상천)
새들은 산속 나무에 쉴 곳을 잃었고
스님은 돌 위의 샘물을 찾네.
飢烏啼野外 (기오제야외)
凍柳臥溪邊 (동류와계변)
굶주린 까마귀 들녘에서 울어대고
얼어붙은 버드나무 시냇가에 누워있네.
何處人家在 (하처인가재)
遠林生白煙 (원림생백연)
어느 곳에 인가가 있는가?
멀리 숲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네.
소설(小雪)은 날씨가 제법 차가워지고 첫눈이 내린다는 날입니다. 깨끗한 눈이 탐욕으로 더럽혀진 세상을 덮어주면 좋겠습니다.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맑은 시도 그러한 일을 해줍니다.
이 시는 그림 그리듯이 읽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눈이 내려 온 천지가 다 하야니 흰색의 화폭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허공에 검은 점 하나를 찍고 그 아래 다시 검은 점 둘을 찍습니다. 눈이 내리면 새들은 먹이를 찾지 못하여 허공을 배회하니 그것이 허공에 찍은 검은 점이요, 돌샘은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아 검은 옷을 입은 승려가 그곳으로 물을 길러 가니 이것이 화폭 아래쪽에 찍어놓은 두 개의 검은 점이겠지요.
검은 점 몇 있고 온통 흰빛이던 화폭의 풍경이 점차 또렷해집니다. 먼 들판 너머로 날아가는 까마귀와 개울 곁에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둥치가 꺾어진 버드나무가 보입니다. 눈 덮인 숲도 보이고 깡깡 언 개울도 드러납니다. 이제 풍경이 환해졌습니다. 그러나 좀 춥습니다. 이렇게만 끝내면,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 버들처럼 춥고 까마귀처럼 배고프겠지요. 인정 많은 시인은 이렇게 시를 끝내지 않습니다. 시인은 숲 너머로 연기를 피워 올렸습니다. 물론 그림에는 초가를 그리지 않았겠지요. 이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입니다.
이숭인(李崇仁)은 고려말의 이른바 삼은의 한 사람이다.
본관이 성주,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다.
길재(吉再)등과 함께 고려의 유신으로 남아 그 절개가 후대에 높이 평가 받았다.
그는 아름다운 풍광을 시에 담는데 능했던 사람이다.
눈이 내려 온 천지가 하얗다. 산도 없고 물도 없이 모두 흰색일 뿐이다.
독자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화폭에는 아무것도 없이 흰 눈빛만 담겨있다.
그러다가 허공에 검은 점 하나가 찍힌다. 그것이 새다.
온 숲이 모두 하얀 상태에서 둥지를 찾지 못한 새 한 마리 허공을 맴돈다.
다시 화폭의 아래쪽에 점이 둘 나타난다.
검은 점 하나는 온통 하얀 눈 위에서 잿빛 옷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뒤로 발자국 모래알 같은 점 몇 개 더.
그리고 그 앞에 돌샘에는 눈이 쌓이지 못해 물빛이 오히려 검다.
요사채 저만치 돌확일 수도 있다.
이 대목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흰 바탕에 점 세 개면 충분하리.
그래놔도 독자는 화선지위의 점 세 개가 새, 스님, 돌확임을 유추한다.
이 시는 1연에서는 아무런 형상을 그리지 않고 흰 칠만 했다.
2연에서 검은 점 몇 개 찍었다.
흰빛갈 속에서 희미한 새 둥지와 스님의 발자국도 볼 수 있다.
이제 3연이 되면 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사물들이 차츰 구체적 형상을 드러낸다.
2연의 새보다 훨씬큰 까마귀가 들판 저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눈 덮인 산천에 까마귀는 어인일로 날아갈까? 배가고파서다.
눈 덮인 야지에서 먹이를 찾지 못하니 어디론가 가 봐야 할 것이다.
화폭의 다른 면도 윤곽이 조금 그려진다.
개울이 있고 그 곁에 버들 한 그루 쓰라져 있다.
이 장면에 바람은 없으니 눈의 무계에 가지가 찢어져 내린 모양새가 나온다.
춥다. 추운 것으로 끝내면 벼들처럼 춥고 까마귀처럼 배가 고파진다.
인정 많은 시인은 여기서 인정을 베푼다.
춥고 배고픈 사람이 가고 싶은 곳은 따뜻한 아랫목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 집 한 채 그려 넣는다고 따뜻해 질 수 없다.
역시 하얗게 밖에 못 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숲 저편 너머 어딘가 피어오르는 연기를 그려 넣었다.
그 연기 밑 어딘가에 민가를 숨겨 놓았다.
가느다란 흰 연기가 온기를 몰고 온다.
이 시에는 소리도 있다. 까아악. 배가고파 우는 까마귀 울음.
자세히 들어보면 밤새 얼지 않고 돌확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도 들린다.
또 조금 더 숨죽여 들어보면 눈 위를 걷는 스님의 발자국소리도 들린다.
뽀드드득. 버드나무 부러지는 소리는 과거완료형이지만
스님의 발자국소리와 까마귀 소리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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