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국화의 미소 - 신사 박인걸
바람은 서쪽으로 물러가고
빛은 마른 입술로 저문다.
한 줄기 숨결로 남은 들녘 위에
들국화 고요히 빛을 단련한다.
뒤늦게 피었으나
송이마다 오래 기다린 자의 얼굴을 가졌다.
자신을 모두 태워야 드러나는
투명한 의지 하나로 피었다.
그 노란 입맞춤은 눈물의 가장자리에 피고
향기는 기도의 문장으로 변해
하늘과 땅의 틈새를 메운다.
세상은 이미 낙엽의 침묵으로 저물어가는데
들국화는 오히려 그때 웃는다.
저물어야 드러내는 영혼의 색으로
늦게 피어 더 깊은 빛을 지닌 꽃이여
고운 미소는 화려함이 아니라 인내의 흔적
지나온 계절의 모든 상처가
꽃송이의 숨결로 정화되어간다.
포기지어 피어난 들국화여!
지는 계절에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구나!
네 청초한 침묵 속에서
나는 늙은 시간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이 어떤 성녀처럼 거룩하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명자꽃이 전하는 말 - 최원익 (1) | 2025.10.21 |
|---|---|
| 물레나물 꽃 - 백승훈 (0) | 2025.10.20 |
| 조팝나무 꽃 - 김승기 (0) | 2025.10.16 |
| 동백꽃 - 백승훈 (0) | 2025.10.14 |
| 쑥부쟁이 - 신사 박인걸 (0) | 2025.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