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김명인 갈 데 없어 한나절을 베고 누웠는데 낮잠인가 싶어 설핏 깨어나니 어느새 화안한 석양이다 문턱을 딛고 방 안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들 먼 길 가다 잠시 쉬러 들어온 이 애잔, 그대의 행장이려니 움켜쥐려 하자 손등에 반짝이는 물기 빛살 속으로 손을 디밀어도 온기가 없다 나는 삯 진 여름 지나온 것일까 놓친 것이 많았다니 그대도 지금은 해 길이만큼 줄였겠구나 어디서 풀벌레 운다, 귀먹고 눈도 먹먹한데 찢어지게 가난한 저 울음 상자는 왜 텅 빈 바람 소리까지 담아두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