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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양현주

HIIO 2019. 12. 14. 10:16

사이




숲, 간격과 간격 사이가 동그랗다

시린 꽃등이 흠뻑 젖은 햇살을 털어낼 때
나무와 나무는 거리를 잰다

출근길 지하철 신도림역
라일락꽃 짧은 치마가 사람들과 간격이 좁아져도
당신과 나의 수평은 뜨겁다

숱한 달빛이 숲을 걸어오면
빛 쪽으로 기우뚱한 가지를 일으키는 것
나무는 바람의 방향으로 되돌아오는 습성을 가졌다

숲에 도객이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수많은 잎이 화염으로 불탄다

한 시절이 지나고 출렁이는 간격들
구름에 닿은 나뭇가지가 하얀 뿌리를 허공으로 뻗는다
구속하지도 않는 사이와 사이는 두텁다

끝내 버티는, 무변의 간격


- 양현주, 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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