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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 - 김유석

HIIO 2020. 2. 3. 09:29



소의 급소는 뿔에 있다.

감때사나운 부사리의 뿔을 각목으로 내려치면 이내 직수굿해진다.
각목 하나로 커다란 덩치를 다룰 수 있다. 이후

각목만 보면, 각목을 들었던 사람만 보면 기를 꺾는 소의 기억은

뿔에 있다. 밖으로 드러내놓고 살아가는 소의 기억은 후천성.

뿔이 난 후에야 송아지는 자신이 소임을 알게 된다.

뿔의 정체는 두려움, 두려움을 먹고 살이 찌고

우직한 힘을 잠재울 줄 아는 두려움이 연한 풀이나 뜯는 족속을 보전해 왔다.

뿔과 뿔을 맞대고 뿔뿔이 다툴 때

막가파처럼 뿔을 밀고 달려들 때가 더 슬픈

자기독재자여, 그러나 뿔이 없는 건 우공牛公이 아니다.


- 김유석, 시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