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숲에서
바람이 사정없이 지나갈 때
여린 몸뚱이 끝없이 흔들리며
서로가 부딪치며 흐느끼는 소리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일 뿐이네.
가을 햇살 아래서조차
서글프게 퇴색하는 갈빛 서러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잃어가는 색감
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 남은 어두운 흔적들
머무르지 않는 것들에 기대어
자신만만하던 푸르름도 희미해져 가고
연약한 뿌리에만 의존한 채
삶이란 스러져가는 갈대의 운명이네.
여름날 푸르고 빛나던 잎사귀들이
시간의 장난에 부서져 흩어지고
어떤 늙은이처럼 잃어가는 제 모습이
슬픔이 아닌 듯 슬픔만 흐르네.
다시 찾아올 기약도 없이
갈대숲은 서글픔 속에 굳건히 서 있지만
무수한 흔들림 속에 머잖아
그마저도 사라지고 말 운명이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동에 부쳐 - 박인걸 (1) | 2024.11.07 |
---|---|
노란국화 앞에서 / 정심 김덕성 (1) | 2024.11.05 |
쑥부쟁이 - 김승기 (2) | 2024.11.01 |
가을 민들레 - 鞍山백원기 (1) | 2024.10.31 |
갈잎 / 성백군 (1) |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