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쭉 피는 동네 - 信士 박인걸
붉은 소음들이 돌담을 타고 넘을 때
빈칸으로 남겨둔 내 마음의 틈새마다
꽃들이 핏방울처럼 툭, 툭, 불거져 나오고
누가 이 도시에 붉은 도장을 찍었는지 묻는 사이
봄은 잔인하게 인쇄된 전단처럼 흩날린다.
고층아파트 옥상 모서리에
철쭉보다 더 붉게 저녁놀이 걸려있고
소리 없는 비명이 철쭉꽃잎 속에 고여
사람들은 화단 앞에 서서 침묵을 전시하는 동안
뿌리는 시멘트 아래에서 길을 잃는다.
누군가가 대야의 물을 길가에 쏟아낼 때
비눗물 섞인 거품이 꽃 뿌리를 적시고
생존은 왜 이토록 지독한 빛을 띠는지 묻게 되는 순간
어릴 적 냇가에 피던 색깔이 되살아나
나는 아직 살아 있는지 되묻게 된다.
오토바이 소음이 마을 허리를 자르고 지나가면
꽃들은 일제히 고개를 떨구며 항의하지만
내일이면 다시 뻔뻔하게 피어날 것임을 예감하듯
향기 진동하는 이 동네는 꽃대궐이라 불리고
마침표 없는 문장들이 담벼락에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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