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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달맞이 꽃 - 信士 박인걸

HIIO 2026. 7. 6. 09:30

금 달맞이 꽃 - 信士 박인걸

내 유년의 시간은 늘 낮게 고여 있었다.
축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밤이면 금빛 등불을 켜던 그 꽃
나는 오래도록 그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마을 빈터마다 번져가던 노란 꽃잎은
누군가 밤새 흘려놓은 눈물의 자국처럼
새벽마다 조용히 피어났다.

날이 새면 새들은 불길하게 울어댔고
반쪽을 잃은 달은 얼음덩이처럼 굳어갔다.
그 아래 달맞이꽃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곧 쏟아질 대낮의 폭염(暴炎) 앞에서
두려움에 엎드리는 항복이었다.

아주 가까이 다가서면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 깊이 은닉해 둔 투명한 이름 하나
꽃들은 그 이름을 삼킨 채
밤새 잎맥을 떨었고
새벽은 그 떨림을 끝내 알아듣지 못했다.

아침 햇살에 하나같이 총 맞은 듯 쓰러지고
어스름 달빛이 내려앉을 때마다
기괴할 만큼 환하게 웃음 짖는 꽃
끝내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며
밤마다 서서히 눈이 멀어 가던 그 꽃은
내 유년이 오래도록 품고 있던
한 장의 자화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