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꽃물 - 박종영 장독대 옆 빈터에 심었던 봉선화가 누구네 여인처럼 꽃 씨방 봉봉 하게 아기를 뱄다 무덥고 긴 여름날 보채고 짓이기더니 초가을 선선한 바람 불자 만삭의 꽃 씨방 옥문을 연다. 토해내는 까만 알갱이 쏟아지는 씨앗들이 날아가면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가관이다. "세상 구경은 지금부터다! 생명의 존귀함을 명심하라 눈치껏 누울 자리 골라 터를 잡아야 하느니라" 첫눈이 오기 전까지 봉선화 꽃물이 손톱 끝에 다다르면 첫사랑이 찾아올 거라 믿는 순이의 젖가슴이 높게 출렁이고, 나직한 산허리 후덥지근한 산골에 처박혀 사랑에 목맨 풀국새 울음이 산자락을 메우는데, 어느 시절에나 수줍음 타며 초승달이 되는 봉선화 꽃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