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847

국화 꽃 - 박인걸

국화 꽃나뭇잎 일제히 낙엽이 될 때면조용히 꽃잎을 여는 국화꽃희망을 접는 시간을 거슬러조용히 피어나는 너의 이야기는홀로 남은 자의 슬픔 같구나.긴 기다림 끝에 빛을 내는네 꽃잎에 서린 애잔함이여시들어버린 지난날의 꿈을 담아계절의 끝에서 울 듯 피어오르니아직 남은 이들의 그리움이구나.차가운 땅을 밟고도 꿋꿋한 너는사라져가는 잎새들 사이에서홀로 서서 그리운 이름을 부르며바람에 기대어 한 송이 꽃을 피우니기다림의 의미를 비로소 깨우치는구나.늦게 피어나는 삶이 아름답다며세상에 속삭이는 잔잔한 향기여!지나온 시간의 쓸쓸한 기억을 품고흩어질 때조차 잊히지 않는 꽃으로바람에 실려 영원히 머물거라.

좋은 글 2024.11.12

담쟁이 제국 - 박인걸

담쟁이 제국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 된 꿈쇠를 움켜잡고 조용히 기어오른다.벽은 가파르고 미끄러져도담쟁이 넝쿨은 아랑곳하지 않는다.화판을 채우는 한폭의 그림처럼섬세하면서도 아주 끈질기게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려도아무 말 없이 기어오른다.햇살이 찾아오지 앉는 곳에서도포기하지 않고 팔을 뻗는다.거꾸로 매달려 어지러워도더욱 낮은 몸으로 엎드린다.맞잡은 손길에 의지가 있고서로가 길을 여는 연대감이 깊다.포기하지 않는 배짱으로억센 벽을 녹여나간다.어둠 속에서도 항상 빛을 찾아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영역을특유의 기술과 도전의지로자신들만의 세상을 창조한다.사막보다 더 삭막한 방음벽에담쟁이 제국을 곱게 세웠다.

좋은 글 2024.11.11

둥굴레 - 백승훈

둥굴레 - 백승훈  둥굴레차 까닭도 없이잠 오지 않는 밤홀로 깨어유년의 밥상머리보리밥 숭늉처럼 구수한둥굴레차를 마시면생각난다커피만 고집하는 내게울밑에 키워 말린 둥굴레 몇 뿌리곱게 싸서 건네며 하시던어머니 말씀  은근한 것이 오래 간다고구수한 것이 그게 사람 사는 맛이라던.  글.사진 - 백승훈 시인 둥굴레 :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높이는 30∼60㎝ 정도로 비스듬히 자란다.땅속줄기는 옆으로 뻗어서 자라며, 줄기는 6개의 모가 있다.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게 난다.꽃은 여름철에 흰 종모양으로 1, 2개씩 잎겨드랑이에 매달린다. 뿌리는 약재나 차로 쓰며,춘궁기에는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다.

좋은 글 2024.11.08

입동에 부쳐 - 박인걸

입동에 부쳐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처럼너와 나 사이도 냉기가 돌고 있네.연락 없이 지나친 시간들이우리를 겨울로 밀어냈네.한때 뜨겁게 얽혔던 손길이이제는 서늘한 잔상만 남기고그 시절 뜨겁던 온기의 조각들이찬 서리 내린 듯 아득해졌네.사람의 사이에도 끝이 있음을불안한 예감을 억누른 채 잡았던 손은입동의 찬 바람에 무너지고저만치 멀어져만 가네.계절이 변한 탓은 아니지만마음이 변하니 따스한 눈빛도 얼어붙네.서로가 온기를 잃어가는 동안우리는 깊은 겨울이 되어 가네.

좋은 글 2024.11.07

노란국화 앞에서 / 정심 김덕성

노란국화 앞에서 / 정심 김덕성공활한 가을 하늘청순한 기풍을 이루키며 빛나고나뭇잎은 제법 곱게 가을을 물들이며아쉬움으로 떠날 준비한다생일 날 아들이 보내온 국화온 집안이 온통 국화 향으로 물들이며정조하고 진실한 정겨운 노란 미소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가을에 피고 싶은 꽃이여창가에 햇살은 노란 꽃송이에 내리고꽃향기 향기롭지만 소박한 자태가국화를 더 고귀하게 하누나어느 것 보다 청초한 충모향기를 품은고 조용이 다가오는 꽃송이차분히 흐르는 고결한 맑은 미소에수습은 듯 말없이 미소 짓는 나마음마저 빼앗기고

좋은 글 2024.11.05

갈대숲에서 - 박인걸

갈대숲에서바람이 사정없이 지나갈 때여린 몸뚱이 끝없이 흔들리며서로가 부딪치며 흐느끼는 소리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일 뿐이네. 가을 햇살 아래서조차서글프게 퇴색하는 갈빛 서러움한 번 흔들릴 때마다 잃어가는 색감바람이 스쳐 간 자리에 남은 어두운 흔적들머무르지 않는 것들에 기대어자신만만하던 푸르름도 희미해져 가고연약한 뿌리에만 의존한 채삶이란 스러져가는 갈대의 운명이네.여름날 푸르고 빛나던 잎사귀들이시간의 장난에 부서져 흩어지고어떤 늙은이처럼 잃어가는 제 모습이슬픔이 아닌 듯 슬픔만 흐르네.다시 찾아올 기약도 없이갈대숲은 서글픔 속에 굳건히 서 있지만무수한 흔들림 속에 머잖아그마저도 사라지고 말 운명이네.

좋은 글 2024.11.04

쑥부쟁이 - 김승기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쑥부쟁이 어디로 가야 할까온몸으로 피워낸 열정스러지면목 메이는 이 荒凉한 들판을 두고내 영혼 어디에서 뉘여야 할까여름 내내 푸름에 둘러싸여크게 한 번 소리내지 못했어도이젠 다들 떠나간 뒤끝내 웃음이 없었으면늦가을의 하늘이 얼마나 삭막했으랴이제 겨울이 와 있는데웃음을 거두고 난말라비틀어진 이 몰골로겨울의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바람소리만밤새도록 목을 조른다※ 쑥부쟁이 :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처의 들에 자생한다. 줄기는 가지를 치고, 뿌리에서 나온 잎은 꽃이 필 때 없어지며, 줄기에서 나온 어긋나는데 길고 넓은 피침형으로 가장자리는 깊게 갈라져 깃 모양이다. 갈래는 안쪽으로 굽고, 털이 없으며, 윤택이 나고, 위로 올라갈수록..

좋은 글 2024.11.01

갈잎 / 성백군

갈잎 / 성백군베란다 들창으로 내다보이는저 활엽수 갈잎일전에 전해받은 젊은 지인의 부고 같다.육십 대인데이제 겨우 가을 입군데곧 있으면 단풍 들 텐데, 뭐가 그리 급해서사고사인지 병사인지 모르겠지만흉하다죽음 앞에마땅히 위로해야 하겠지만늙음이 싫다고 스스로 자진한 것 같아싫다.가을엔단풍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도 모르고일찍 죽은 저 갈잎늙음을 욕보인다고 청소부 아저씨가포대에 쓸어 담아 숨도 못 쉬게아귀를 꼭꼭 묶어 길거리에 내놓았다

좋은 글 2024.10.29

들국화 연가 / 정심 김덕성

들국화 연가 / 정심 김덕성고적한 가을 들녘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외로움이슬 머금고 고운 향내 풍기는청조한 들국화깊어가는 가을 밤고독으로 시달림 받으면서도깊은 밤마다 님만을 그리며내뿜는 향이 감미롭다비록 눈부시게 곱지 않아도행여나 님의 발자국 소리 들릴까밤새 뜬눈으로 기다리는지극한 사랑의 여인강풍에도 흔들림 없는고결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영역을 지키는 들국화너의 풍모와 그 뜻이 아름다워찬사와 사랑을 보내노니

좋은 글 202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