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911

춘분일기 - 이해인

춘분일기/이해인 바람이 불 듯 말 듯꽃이 필 듯 말 듯해마다 3월 21일은파밭의 흙 한 줌 찍어다가내가 처음으로시를 쓰는 날입니다밤과 낮의 길이가똑같다구요?모든 이에게골고루 사랑을 나누어주는봄햇살 엄마가 되고 싶다고춘분처럼밤낮 길이 똑같아서 공평한세상의 누이가 되고 싶다고일기에 썼습니다아직 겨울이 숨어 있는꽃샘바람에설레며 피어나는내 마음의 춘란 한 송이오늘따라은은하고어여쁩니다

좋은 글 2025.03.20

봄 눈 - 박동수

봄 눈                              글 : 박동수떠나기 싫어 싸늘한 시샘으로오는 봄 옷 자락 붙들고시린 바람으로 불더니기어코 이 3월의 밤꽃 바람을 앞질러하얀 눈으로 내리는구나봄 싹이 겨우내 너의 발 앞에엎디어 굴욕을 견디다겨울 가지에서기지개를 펴는 즈음 무슨 심술일까가지마다 아침이면 쓸어질눈 꽃을 만들어 아직도 네 위세를떨치고 싶은 욕망을거두지 못하는 것은스스로 이별의 아픔을 감추려는잔인한 몸부림인가세월은 그렇게욕망으로 붙들어 질나약한 수레바퀴 같지 않으리아서라 네 추함을 거두고이침의 햇살을 고이 담아봄 아씨께 건내고 아픈 이별일지라도아지랑이 앞서 가는 것이어떠하리.

좋은 글 2025.03.18

산수유 피던 날 - 박인걸

산수유 피던 날 - 박인걸   동쪽으로 흐르는 청계천 변에 철 이른 산수유 샛노란 웃음 머금고 탐스럽게 피었다.   외로이 외로이 오직 한 그루 담벼락에 기대어 찬 바람 속에서도 가만히 봄을 품었다.   인파 붐비는 한낮 어쩌다 호기심에 걷던 길 소담한 꽃잎 틈으로 지난날이 스몄다.   샛노란 꽃송이를 보면 내 마음 깊이 간직한 소녀의 눈빛이 세월의 시내를 수천 번 건넜어도 여전하다.   나 여기 어찌 올 줄 미리 알고 순수유 꽃 저리 곱게 피어 반기네. 찬 바람에 귓불 시려도 내 가슴 따뜻하다.

좋은 글 2025.03.17

벼랑에 피는 희망 - 돌단풍 백승훈

벼랑에 피는 희망 - 돌단풍겨우내 얼었던 강이 풀리니다시 물소리 명랑해졌습니다. 강기슭바위 틈에서 겨울을 난 돌단풍도물소리에 잠 깨어 서둘러 꽃대를 밀어올리고하얀 꽃 내어달고 강의 노래에 귀 기울입니다. 돌단풍이 세상의 너른 땅 마다하고바위 벼랑에서 꽃을 피우는 것은소리치며 흘러가는봄날의 강물소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눈부신 봄이 찾아오리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이라는 꽃말을 지닌 돌단풍이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희고 고운 꽃으로 강변을 수놓듯그대의 봄도희망으로 가득찼으면 좋겠습니다. 참아름다운 봄입니다.글.사진 - 백승훈

좋은 글 2025.03.14

봄길 / 정호승

봄길 / 정호승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봄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보라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좋은 글 2025.03.13

봄 나비 - 박인걸

봄 나비 - 박인걸 아지랑이 피는 비탈길 겨울잠에 취한 나비 한 마리 비틀거린다. 꽃 한 송이 없는 나뭇가지 사이로 누군가를 찾아 길을 나섰다. 기나긴 겨울을 넘어 아직 남은 찬 기운에 떨면서도 이토록 바쁜 날갯짓 서두르는 건 봄의 향기를 따라가려는 걸까. 아직은 심술궂은 봄바람이 사정없이 달려들어 밀어내고 가녀린 날갯짓 시간은 흐르는데 애타는 목소리마저 바람 곁에 흩어진다 날은 이미 저물어 석양도 묻혔는데 지금쯤 짝을 만났으려나 산기슭 맴돌던 봄 나비 작은 몸짓이 끝내 내 마음에 걸린다.

좋은 글 2025.03.10

매화는 추위를 견뎌 맑은 향기를 흘린다 - 백승훈

매화는 추위를 견뎌 맑은 향기를 흘린다 남녘엔 벌써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입니다.매화는 사군자 중에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하며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지요.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무렵이면잊지 않고 제가 가슴에 새기는 글 중에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이 있습니다.매화는 모진 추위를 견딘 후에 맑은 향기를 피운다는 말입니다.매화는 굽어지고, 상처 난 줄기를 지니고도 해마다 새로운 꽃을 피웁니다.그래서일까요?옛사람들은 눈 속에 피는 설중매(雪中梅)를매화 중에 으뜸으로 꼽았습니다.추위가 매울수록 매화는 더 맑은 향기를 피우고사람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그 절개가 드러나는 법입니다.아직 마음 속 한기 가시지 않아이대로 봄을 맞는 것이 두려우시다면저 붉은 매화 한 송이 가슴에 품으시고부디 눈부신 봄날을..

좋은 글 2025.03.07

봄 눈 - 박동수

봄 눈                              글 : 박동수떠나기 싫어 싸늘한 시샘으로오는 봄 옷 자락 붙들고시린 바람으로 불더니기어코 이 3월의 밤꽃 바람을 앞질러하얀 눈으로 내리는구나봄 싹이 겨우내 너의 발 앞에엎디어 굴욕을 견디다겨울 가지에서기지개를 펴는 즈음 무슨 심술일까가지마다 아침이면 쓸어질눈 꽃을 만들어 아직도 네 위세를떨치고 싶은 욕망을거두지 못하는 것은스스로 이별의 아픔을 감추려는잔인한 몸부림인가세월은 그렇게욕망으로 붙들어 질나약한 수레바퀴 같지 않으리아서라 네 추함을 거두고이침의 햇살을 고이 담아봄 아씨께 건내고 아픈 이별일지라도아지랑이 앞서 가는 것이어떠하리.

좋은 글 20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