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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앵두를 먹는 법 - 이정록 #소만

보리앵두를 먹는 법 - 이정록    앵두를 오래 먹는 법은 따 먹지 않는 거다  한 주먹 우물거려도 앵두씨나 가득할 것을  싸돌아다니는 닭들 목구멍이나 막히게 할 것을   툇마루에 그림자 하나 앉혀놓고 눈으로 먹는 거다   보리알만 해진 눈곱 곁에 앵두알 눈동자를 짝 지우는 거다   눈동자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받아먹는 거다   앵두뺨을 훔치는 소만 망종의 달빛까지 핥아먹는 거다   앵두뺨과 앵두이파리의 솜털이 내 귓불에도 돋아나게 하는 거다   그리하여 달빛앵두인 양 날 훔쳐보는 사람 하나 갖는 거다   나 몰라라 슬그머니 앵두이파리 뒤쪽에 숨어   혼자 날아온 새처럼 깃이나 다듬는 거다   처음 만나는 눈길인 양 쌍꺼풀만 깜짝이는 거다   돌아앉아 앵두가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나직이 우..

좋은 글 2024.05.20

박태기나무 꽃을 보면 - 김승기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박태기나무 꽃을 보면 - 김승기봄 길을 걸을 때마다담장 옆에만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가지마다 팥알 같은 꽃을촘촘히 달고 있는 박태기나무는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어릴 적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보릿고개의 마루턱에서손자의 생일을 위해열 돌을 먹어야만 무병장수한다며십 년을 한결같이수수경단을 만들던쭈글했던 할머니의 손을 생각하게 한다볼 수 없는 할머니의 얼굴이휑한 가슴 속에서 되살아나고,그렇게도 먹기 싫었던 수수경단의오돌톨하게 붙어 있던 팥알들이오늘 박태기나무 꽃으로 다시 피는 것은,나이를 먹으면서 어쩔 수 없이할머니를 닮아 가는 건 아닐까깜짝 놀라며 진저리를 치곤 한다※ 박태기나무 : 콩과의 낙엽성 활엽 관목으로 중국 원산인 귀화식물이..

좋은 글 2024.05.17

장미꽃 앞에서 / 정심 김덕성

장미꽃 앞에서 / 정심 김덕성계절의 여왕 오월희망 빛이 더 짙어지는붉은 장미에 사랑을 더한 이름흑장미의 미소가 너무 곱다붉게 물들인 고운 얼굴오월의 여왕으로 고고하게 군림해사랑의 불꽃으로 붉게 타올라빠질 붉은 사랑의 미로여짙은 장미향에 취하고아름다운 미모에 그만 취해버린눈길 들 수 없는 설렘으로조심조심 다가가는데핏빛으로 피어난 장빨간 꽃등으로 환히 불 밝히고저토록 심장이 붉게 달아오르는데주저하지 말고 우리도불꽃으로 선하게 피어나리

좋은 글 2024.05.16

아카시아 꽃 앞에서 / 정심 김덕성

아카시아 꽃 앞에서 / 정심 김덕성은은한 꽃향기로 덮은 산야달콤한 사랑을 하얗게 물들인다눈부신 하얀빛이소박한 한국의 미를 들어낸 듯순수한 아름다음에 취해발길 멈추는 꽃송이추억담긴 화려한 봄날그리움으로 덮은 하얀 숲에는달콤하게 핀 아카시아 꽃잎 속에떠오르는 어머니 얼굴아카시아 꽃 필 때면달콤한 꽃잎에 매혹되어하얀 꽃잎을 함께 따던 어머니그리움이 왈칵 밀려오는데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아점점 희미해져 가는

좋은 글 2024.05.13

춘심을 낚아채는 매발톱 꽃 - 백승훈

춘심을 낚아채는 매발톱 꽃 - 백승훈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어머니는 내게 병아리를 돌보라 하시곤 들로 나가시곤 했습니다.안마당에 풀어놓으면 노랑 병아리들은 어미닭을 따라 다니며담장에 늘어진 개나리꽃을 쪼기도 하고모래를 파헤쳐 모이를 찾기도 하며 평화롭게 뛰놀았습니다.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어미닭이 급하게 꾹꾹꾹, 큰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내면병아리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재빠르게 어미닭의 품속으로 숨었습니다.그때마다 고개 젖혀 하늘을 올려다 보면어김없이 솔개 한 마리 공중에 떠서빙빙 맴을 돌며 날고 있었지요.잠시라도 방심하면 병아리를 채가는솔개의 발톱을 빼닮은 매발톱 꽃을 보면어린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매발톱 꽃은 생김새도 독특하고 꽃빛도 다양하고 고와서집에서도 관상용으로 많이 키..

좋은 글 2024.05.10

모란꽃 앞에서 / 정심 김덕성

모란꽃 앞에서 / 정심 김덕성아침 햇살 빛나는데불타오르는 붉은 함박웃음으로해맑게 다가오는 모란꽃빨갛게 물들인 듯반갑게 만난 정열의 여인 모란꽃바람에 꽃잎 흔들리는 그리움붉은 사랑을 토해낸다모란이 꽃 피는 계절꿀벌들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데꽃송이 속에 다가오는 추억들고요하던 마음이 설렌다오월의 첫 날활짝 핀 모란꽃이 다 진다해도아쉬움이 가슴을 메어져도다시 모란이 피는 날까지잊지 않고 기다릴게요

좋은 글 2024.05.07

제비꽃 전설 - 박동수

제비꽃 전설박동수먼 하늘을 보았네.파란 하늘이 빛이 나고어디론가 훨훨 날고 싶었지평화로운 세상 꿈꾸다여위어가는 작은 생명안고먼 하늘나라로 갔지만다시 그대 보고 싶어이른 봄 아침부터멍든 자주 빛 머금고길섶에도 돌담 사이에도뿌리내리고 푸른 그리움기다려 보고 있네.울고 웃고 싶을 때가슴속 메마름보라 빛 꽃 물 드리우고가슴속 맺힌 마음뿌리로 갈무리하고제비 되어 날고 싶네.

좋은 글 2024.05.06

선인장과 할머니 - 김승기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선인장과 할머니 김승기성냥갑 같은 방안화분으로 창가에 놓여져담배 연기를 호흡해야 하는 생활화살처럼 쏟아지는 시선이 따갑습니다뭉툭한 줄기 가시만 삐죽빼죽「왜 이렇게 못 생겼어요?」빙그레 웃으시던 할머니의 얼굴불면증으로 시달린 끝의 서툰 잠그래서 꾸는 가위눌린 꿈삶의 멍에가 되었습니다평생 듣지 못한 할머니의 고향「그립지 않으신가요?」미간 찡그리시던 할머니의 얼굴언뜻 회한의 그림자를 무심코 보았습니다바람이 시퍼렇게 칼날을 세우는 겨울밤그 피멍든 세월을 어루만지시더니어느 봄날마침내 한 송이 꽃을 커다랗게 피우고 나서별이 되신 할머니그립습니다몸 속에 흐르는 할머니의 유전인자뭉툭툭한 줄기 투박한 껍질을 쓰고삐죽삐죽 엉성한 가시 사이로지금 한낮의 햇살이..

좋은 글 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