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10분에 후에왕궁 주차장 도착한다.
후에왕궁은 넓어서 20$ 옵션인 전동차를 타고 돌아보기로 한다.
주차장을 출발한 전동차는 왕궁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서쪽에서 왕궁에 들어가는 문인 광덕문(廣德門)을 향한다. 광덕문은 후에왕궁을 둘러싸고있는 외성을 들어오는 외곽문이다.
광덕문을 지나면 안에 1803년 가륭제 시기에 주조된 5문의 대포가 있는데 중국의 오행사상을 상징하여 왕궁을 지킨다고 믿으며 실제 사용한 적은 없다. 대포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왕궁의 정문인 오문에 설치되어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동쪽에 있는 예인문(禮仁門)에 4계절을 의미하는 4문의 대포가 더 있다.
전동차는 왕궁의 정문으로 가는 바리케이트 앞에서 우리를 내려준다.
후에왕궁 정문 앞에있는 피라미드형 건축물에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는데 1807년 왕궁을 지을 때 방어를 위해서 망루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130년이 넘도록 응우옌 왕조의 깃발이 걸려있었으나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후 현재의 금성홍기로 깃발이 바뀌었다. 37미터의 높이로 왕의 기사라고 불리는 국기게양대로 피라미드식 3층으로 아래층부터 자연, 인간, 천국을 상징한다. 1831년 태풍에 파괴되고 1947년에 다시 파괴된 후 1969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게양대 좌측으로 멀리 연륜이 엿보이는 성루가 하나 보이는데 광덕문과 비슷한 형태인 것으로 보아 또 다른 외곽문인 것 같다.
옆에서 보면 후에왕궁의 정문이 보이는데 1833년 민 망 황제 시기에 완성된 왕궁의 정문인 오문(午門, Cua Ngo Mon /Ngo Mon Gate)으로 정오에는 해가 문 앞에 떠 있어 응오몬(正午門)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중국에서 북쪽을 자(子), 남쪽을 오(午)라 했기때문에 남문을 오문이라고 부른다.
오문 위의 누각은 오봉루(五鳳樓 Lầu Ngũ Phụng)인데 황제가 중요 행사나 의식을 거행했던 누대로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1945년 호찌민 임시 혁명정부에 자리를 내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12대 카이딘 황제 때에 재건된 것으로 지붕은 봉황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응오문의 가운데 노란색 문은 왕, 그 옆 양쪽 문은 대신, 외곽 쪽의 두 문은 병사나 말 등이 통행했다.
오문으로 들어가는 다리 아래에는 향강(Perfume River)에서 들어오는 물을 이용해 폭10미터의 해자가 있는데 적군의 침입을 막는 용도이지만 평시에는 왕과 귀족들의 놀이터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해자는 왕궁에 진입하는 다리와 만나면 호수의 형태를 갖춘다.
현지가이드가 도착해서 왕궁안내도를 같이 보고 오문을 들어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건물의 문양장식을 자세히 본다. 후에성은 다이노이(Dai Noi)라 불리는데 한자로는 大城(대성)으로 외성은 약 10km이고 오문에 이어진 내성은 2.5km 길이에 5m 높이의 성벽으로 되어 있다. 내성의 동문은 인간의 문인 현인문(顯仁門), 서문은 미덕의 문, 남문은 정오의 문인 오문, 북문은 평화의 문이다.
오문을 지나 방형의 커다란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황제가 건너던 금수교(金水橋)가 있고 그 건너편에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해서 만든 태화전(太和殿)이 자리잡고 있다. 진입하는 곳에 삼문 형식의 패방이 세워져 있고 '정직탕평(正直蕩平)'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는데 정직을 최선으로 하여 탕평책을 편다라는 의미이다.
중도교(中道橋)라고도 부르는 금수교다리에서 보면 큰 잉어들이 많이 놀고 있다.
태화전쪽 패방에는 패방에는 고명유구(高明悠久)라고 쓰여있는데 총명함이 영원하다는 뜻이다.
태화전(太和殿)은 후에 황성의 정전이며, 국사를 논의하고 공식 접견, 대관식 등을 하는 곳으로 문관과 무관들이 도열하여 어전회의를 하던 태화전 앞마당 건너편으로 길게 놓여져 있다. 문무대신이 도열하던 곳에는 지금도 품계석이 서있는데 왕과 신하들의 거리가 멀어 말의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태화전을 지키고 있는 듯한 해태를 닮은 조각상을 지나 태화전 안으로 들어선다.
태화전 안에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과 왕조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화려한 모양의 황금색 옥쇄 모습이 인상적이다. 당시 사용하던 관직 표찰과 마지막 왕 바오다이(BaoDai)의 인증 서류 등도 전시되어있다.
당시 왕의 행차, 왕조 시대의 어전회의 모습를 찍어놓은 사진들이 벽에 걸려있다. 황제와 황실을 찍은 사진들도 있는데 응우엔 왕조의 12대왕 카이딘 황제의 사진 앞에서 발을 멈춘다. 1916년 왕위에 올라 1925년에 죽었는데 프랑스 보호령 시절 실권없는 왕으로 세금도 많이 걷는 등 안좋은 왕이었다는데 프랑스가 지배를 위해 왕을 향락에 빠지게 했다고.. 폐결핵으로 죽을 당시에는 아편중독자였다고 한다.
그 옆에 응우엔왕조 11대왕 훙 뜨린 브엉(Hùng Trinh Vương/ 雄楨王-웅정왕)의 사진이 있는데 11대왕은 13번 결혼했으나 후손이 없었다고 한다.
태화전 입구에 후에왕궁 미니어쳐 모형이 있는데 전체 면적은 306000제곱미터이고 지금도 여전히 원형으로 복원 중이다. 모형을 보며 설명을 듣는데 왕, 세자, 왕비가 묵던 궁은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남자들의 출입구였던 동문인 현인문(顯仁門)과 여자들의 출입구인 서문이 있고 평화를 상징하는 호아빈이라는 이름의 북문에는 해자와 연못이 있어서 왕이 놀던 곳이란다. 북문 안쪽에 왕자와 공주들의 거처와 놀이터가 있다. 나잡아 보라~~잡히면 죽는다~~ㅋㅋ 그 옆에 왕이 경연을 하던 공부방이 있고 그 반대편에 후궁들이 사는 곳과 대왕대비의 거처가 있다.
태화전을 나오면 집무실인 근정전 터가 있는데 가장 넓은 곳으로 방화로 불타고 터만 남았다. 넓은 공터는 현재 복원이 진행중이라고 하고 마당 한 가운데 있는 현임각의 솥과는 모양이 다른 큰 대야는 고문도구라고 한다.
태화전 서쪽으로 월영(月英)이라 적힌 출입구인 패방이 하나 서있다.
후에왕궁고박물관 안내판을 지나면 현임각(顯臨閣)에 들어가는 입구인 묘문(廟門)이 나오는데 묘문은 종묘를 출입하는 사당의 문 또는 사찰의 문이라는 뜻이다.
응우엔 왕조기간동안 재임한 왕의 위패와 개국공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현임각(顯臨閣, 히엔럼깍)은 3층짜리 누각으로 민망 황제가 1824년에 만든 왕실사원이다. 높이는 13M로 더 높은 건물의 신축을 금지하면서 왕궁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남아 있는데 왕궁내에 현임각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말라는 황제의 명이 있을 정도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현임각 앞에는 역대 황제의 상징이 새겨진 9개의 커다란 청동 솥(구정/九鼎)이 늘어서있는데 청동 세 발 솥의 무게는 2톤 내외로 황실의 번영을 기구하는 해, 달, 별, 구름등을 새겼다. 민망왕때 만들어진 세발솥은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며 세상의 만물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는데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정통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제일 앞의 구정은 초대 지릉황제의 구정이다.
현임각 설명판과 세조묘로 들어가는 숭공문(崇功門) 설명판을 보고 숭공문(崇功門)을 들어서는데 숭공문 위에는 법고 누각이 있다.
문무백관들이 정사를 보던 건물을 멀리 보면서 세조묘로 간다.
현임각을 마주 보고 우리나라 종묘에 해당하는 세조묘(世祖廟)가 있는데 응우엔 13명의 황제 중 5대~6대와 마지막 13대 황제를 제외한 10명의 황제 위폐가 모셔져 있다. 해태상 같은 동물조각상이 유리방 안에 서있는 곳을 지나 세조묘에 들어서면 세조묘 안에는 건재순에 맞지않게 위패를 모시는 단상이 일렬로 놓여있다.
중앙에 1대 세조인 자롱(Gia Long) 嘉隆황제의 위패가 있는데 당시 베트남을 통일하고 새왕조를 시작했지만 프랑스등 외세의 힘을 빌렸기때문에 별로 존경을 못받는다.
그 옆에 2대왕 민망 (Minh Mạng) 明命(명명) 황제의 위패가 모셔져있는데 세조 두번째 부인의 네번째 아들로 캄보디아와 라오스 북부까지 점령하여 응우웬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룬 왕이다. 노니를 먹으면서 하룻 밤에 세명의 아들을 임신
시켰다는 가이드의 너스레가 웃긴다. 후궁이 6백명이 넘었다고 공식적인 자식이 142명이다.
그 옆의 위패는 1829년부터 35년간 가장 오래 재임한 4대 뜨득 (Tự Ðức / 嗣德)의 것으로 104명의 후궁을 두었다. 그러나 후손이 없어서 자신의 묘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장 호화로운 묘를 가진 왕 104명의 후궁을 두었다. 그러나 후손이 없어서 자신의 묘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장 호화로운 묘를 가진 왕으로 자신의 능을 별장으로 쓰면서 밤새 연잎에 모인
이슬로 차를 마시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9대왕인 동카인 (Ðồng Khánh / 同慶)의 위패가 있는데 8대왕이 프랑스에 저항하여 폐위되고 22세에 즉위하여 26세에 사고로 죽었다. 프랑스여자와 국제결혼을 하여 자식이 있으나 너무 어려서 사촌형제의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그 우측에 8대왕 함응이 (Hàm Nghi / 咸宜)의 위패가 모셔져있는데 1884년 14세에 황제로 즉위하였지만 프랑스에 항
전하라는 격문을 발표하고 왕도 후에를 탈출한다. 프랑스는 즉시 형인 동경제를 즉위시키고 함의제에 귀순을 권유하였지만 저항을 계속하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체포되어 1888년에 알제리로 유배간다. 알제리로 유배를 간 후, 프랑스인 여성과 결혼하였고 3명의 아이를 두었고 1943년 72세에 사망하였다.
그 우측에 10대왕 타인타이 (Thành Thái / 成泰)의 위패가 11대 주이떤 (Duy Tân / 維新)의 위패와 나란히 모셔져있는데 10세에 즉위하여 17년동안 재위에 있다가 프랑스의 압력으로 정신병을 뒤집어쓰고 주이떤(Duy Tân / 維新)에게 양위하였다. 유신제와 함께 독립 운동으로 연좌되어, 아프리카 레위니옹 섬에 유배되었다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종결 직전에 사이공에서 75세로 사망하였다.
11대 유신제는 똑똑한 왕이어서 베트남전쟁의 양상을 바꿀수 있는 왕으로 기대되었으나 비행기사고로 사망했다.
세조묘를 나와 현인각 서쪽에 범종루가 있는 준열문(駿烈門)을 지난다. 현임각을 중앙에 두고 좌측에 종각이 있는준열
문, 우측에 법고가 있는 숭공문이 있는셈이다.
준열문을 지나면 문관과 무관의 집무실 역할을 했던 좌무(左廡, Ta Vu, 따부)와 우무(右廡, Huu Vu, 후부)가 있다. 지금은 문무대신들을 위한 사당으로 꾸며져 있다.
12시 10분, 전동카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길 옆의 담장이 고색창연하다. 후에궁의 문을 하나 지나는데 문에 연결된 시멘트담장은 관리를 위해 친 것이고 안도 바깥도 모두 궁성 관내이다. 담 밖에 농사를 짓는 곳도 후에궁내이다.ㅋㅋ 또 하나의 후에궁의 문을 지나면 해자와 연결된 연못이 나타나고 멀리 후에왕궁 동쪽의 성문이 보인다.
또 지나는 하나의 문에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름이 뭉개져서 식별하기가 힘들어 세월의 무상이 느껴진다.
또 다른 문이 하나 보이고 그 안쪽으로 가정집처럼 보이는 열시당이 있다. 그 앞에서 전동차가 서고 열시당 입구를 지나 왕실극장으로 사용됐던 열시당(閱是堂) 안으로 들어간다.
아담하고 작은 이 궁전극장은 1826년에 지어졌고 지금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베트남의 전통적인 공연 예술로 중국의 경극과 비슷한 투엉(tuong)을 공연하거나 궁중무용과 냐냑(nhã nhạc)이라는 후에 지방의 궁중음악 등을 재현하여 공연을 한다. 민망 황제가 19세기 초 왕족들을 위한 연회장소로 만든 극장으로 베트남 최초의 대극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4년 리모델링한 이후 지금까지 관광객을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열시당 앞에는 해태를 닮은 상이 또 있으며 그리고 입구인 문의 이름은 마모돼서 식별이 되지 않는다.
열시당을 나와 출구로 쓰이는 후에왕궁 동문인 현인문(顯仁門)을 통하여 후에왕궁을 나간다. 현인문을 나오면 해태상이 하나 서있고 해자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 입구의 응오문앞의 외문인 광덕문처럼 현인문을 지나면 광덕문과 대응되는 예인문(禮仁門)을 지난다.
예인문을 나서면서 후에왕궁 관람을 마치고 현지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후에왕궁 동영상으로 보기 클릭 https://youtu.be/8tDkTYWgiVg
----To Be Continued----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다낭 여행후기-9 후에-카이딘왕릉-다낭귀환 (0) | 2020.02.23 |
---|---|
베트남 다낭 여행후기-8 후에-티앤무사원(天姥寺) (0) | 2020.02.13 |
베트남 다낭 여행후기-6 다낭-하이반고개-후에 도착 (0) | 2019.12.15 |
베트남 다낭 여행후기-5 호이안 야경 (0) | 2019.11.29 |
베트남 다낭 여행후기-4 호이안-틴퉁체험-도자기마을-목공예마을 (0) | 2019.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