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사목 앞에서 - 信士 박인걸
백골만 앙상한 가슴은
비 오는 날에도 우두커니 서서
쏟아지는 빗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잃어버린 시간들의 기억마저 지워버렸다.
수만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억만의 잎을 하늘 가득 피워 올리며
굵은 나이테를 새기기 위해
한 번도 눕지 못한 채 휘청거렸다.
밤하늘 별보다 많은 시간을
오로지 거목의 꿈 하나에 전부를 걸고
치솟는 패기를 오장육부 깊숙이 불태웠다.
시름시름 앓던 세월이
어느 날 전깃줄처럼 툭 끊어지던 날
잎과 껍질을 모두 벗겨낸 채
끝내 일어선 모습 그대로 고사목이 되었다.
유령처럼 흔들리는 고사목을 보면
머잖아 들통날 내 신세 같아 씁쓸하다.
오늘은 쏟아지는 햇살마저 차갑다.
그러나 저 메마른 몸속에도
언젠가 누군가의 새싹을 품을 흙이 되고 있으리.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백꽃 - 백승훈 시인 (0) | 2026.07.02 |
|---|---|
| 26년 7월 달력 스마트폰 배경화면 <매발톱꽃> (1) | 2026.07.01 |
| 가시연 - 김승기 시인 (1) | 2026.06.29 |
| 으아리꽃 - 백승훈 시인 (0) | 2026.06.26 |
| 금계국의 미소 - 信士 박인걸 (0) | 2026.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