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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 성백군

느림의 미학 / 성백군 해도 늙습니다 저녁해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는 아침에 다시 떠오르면 되지만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합니다 해 아래 아니 살 수는 없지만 해 따라 살지는 말아요 일상이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고,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면 삶이 우상이고, 구원 없는 종교가 됩니다. 일등이면 어떻고 꼴찌면 어떻습니까 빨리 가면 인생이 더 길어진답니까? 쉬엄쉬엄, 넘어진 아이 일으켜 세우고 기진한 늙은이 손 잡아 이끌어 주고 노숙자에게 푼돈 몇 안겨줘 봐요 시간은 늦어지겠지만 기억해 주는 이 있어 삶은 더 길어지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좋은 글 2024.02.13

흑백사진 한 장 - 다서 신형식

흑백사진 한 장 - 다서 신형식 그 흔한 사랑을 하는데도 저렇게 정확도가 필요했을까 네 얼굴 담긴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수시로 찌그러져야 했던 나의 한쪽 눈 어쩌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절반은 눈 감아주며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뭔가 조금은 불공평한 것 같은 세상에서 적당하게 생존하는 방법이 웃음이라는 걸 사진 속의 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질 것을 알면서도 피고 있었던 저 꽃처럼

좋은 글 2024.02.12

우리 설날은 / 정심 김덕성

우리 설날은 / 정심 김덕성 우리 설날은 뭐니 뭐니 해도 가족 사랑의 날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 감사와 효심으로 부모께 세배올리고 부모는 자식에게 축복하는 사랑의 꽃이 피는 날 한 상에 둘러 앉아 음식 먹으며 정을 나누면서 자식은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 베풀고 형제는 서로 웃음꽃 피우는 훈훈한 사랑이 흐른다 설날은 사랑과 감사를 나누는 우리 가정 뜨겁게 달군 가족 사랑으로 따뜻하게 추위를 녹이는 우리의 설날인 것을 설에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설날 되세요.

좋은 글 2024.02.09

상처 - 이남일

상처 - 이남일 나무숲에는 여기저기 상처들이 매달려 있다. 벌레를 위해 내어준 흔적들이 모두들 가슴에도 말 못할 상처가 숨어있다. 한번쯤 사랑을 위해 내어준 아픔들이 살랑대는 나뭇잎에도 활짝 웃는 웃음 속에도 누군가를 위해 내어준 상처들이 결코 부끄럽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픈 것은 상처가 아니다. 상처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픈 것이다.

좋은 글 2024.02.08

겨울 동백꽃 연가 / 정심 김덕성

겨울 동백꽃 연가 / 정심 김덕성 어느 해안가 황홀하게 만난 예쁜 자태로 빨간 미소 짓는 동백꽃 해마다 겨울이면 애인처럼 만나 뜨거운 꽃 사랑을 받는다 곱다 한들 이리 고울까 눈에 푹 쌓인 채 빨간 얼굴만 내 민 너무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미의 천사가 아닌가 모질게 추운 겨울인데도 맞바람 치는 해풍에도 아랑곳없이 꽃을 피운 강한 생명력을 내 가슴에 심어 주었다 한설에 사랑의 불꽃 피는 미모를 자랑하며 사랑을 주는 꽃 윤기 흐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랑의 여인 그리운 동백꽃이여

좋은 글 2024.02.06

立春의 서곡 / 정심 김덕성

立春의 서곡 / 정심 김덕성 입춘 봄이 온다 아직 잔설이 덮어 있는 산자락에는 이슬 밟히며 고요가 흐르고 샛노란 산수유가 어느 꽃보다 먼저 꽃을 잔뜩 피워 생명이 움트는 가장 아름다운 새봄의 풍광을 알리는 서곡을 연주 엄동을 씻어내는 듯싶다 저만치 서성거리며 잔뜩 부푼 꿈을 안고 가지마다 태동 미세한 소요 속에 미지의 신세계 통증을 겪으며 출산하는 봄 다가온 상큼하고 향긋한 봄 기상나팔로 동면서 깬 봄의 숨결 따스한 마음도 환희의 미소 벅찬 봄의 힘찬 기개氣槪 새봄의 문이 열리고

좋은 글 2024.02.05

이룰 수 없는 사랑 - 꽃무릇 백승훈

이룰 수 없는 사랑 가을비 긋고 간 뜨락에 함초롬히 꽃무릇 한떨기 피었습니다. 항상 서로를 그리워 할 뿐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해 상사(相思)의 정을 품고 사는 꽃. 그리움도 깊어지면 물이 드는가 선홍빛 꽃무릇 핀 뜨락을 서성이며 그리움의 색깔을 생각하다가 붉게 물든 가슴을 가만히 쓸어 내렸습니다. 한 번을 만나도 평생을 만난 듯한 인연이 있고 평생을 만나도 다 못 만나는 인연도 있습니다. 돌아선 뒤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정성으로 대해야 합니다. 독일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한스 카로사의 말처럼 '인생은 만남'이니까요. 글.사진 - 백승훈

좋은 글 2024.02.03

2월 / 정연복

2월 / 정연복 일년 열두 달 중에 제일 키가 작지만 조금도 기죽지 않고 어리광을 피우지도 않는다 추운 겨울과 따뜻한 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 해마다 묵묵히 해낸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기어코 봄은 찾아온다는 것 슬픔과 고통 너머 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 가만가만 깨우쳐 준다.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나를 딛고 새 희망 새 삶으로 나아가라고 자신의 등 아낌없이 내주고 땅에 바싹 엎드린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무지무지 크고 착한 달.

좋은 글 2024.02.02

고등어 - 목필균

고등어 ​ 목필균 간고등어가 노릇하게 구워져 밥상에 오른다 비릿하고 고소한 생선 냄새가 집안을 채운다 서민 밥상을 채우던 흔한 고등어 동그란 큰 눈은 소신공양으로 생을 마친다 푸른 바다를 유영하며 세파에 몸을 키웠을 고도리 시절에는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힘센 놈들에게 치어 구석에 숨어 울지는 않았을까 때론 바다 위로 뛰어오르는 꿈들은 꾸며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고 몸을 키우며 살아질 때까지 그렇게 헤엄치며 그렇게 등 푸르게 살아질 때까지

좋은 글 2024.02.01

손을 들여다보며 - 목필균

손을 들여다보며 ​ 목필균 뼈마디로 들어온 냉기에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며칠이 묶였다 잠도 설치며 끙끙 앓았어도 손톱은 하얗게 자라났다 손등에 파란 핏줄이 가지를 치며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며들고 따끈따끈하게 열이 오른 손바닥은 마주해도 외롭다 칠 학년이 되도록 열 손가락 아직 온전하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유난히 길쭉한 손가락이 수없이 일하며 날 지탱해 주었다 이제껏 온전히 함께해 주어서 고맙다 정년이 다 되도록 지지고 볶은 일터도 돌아보니 보람으로 충만했고 식구들 밥 챙기고, 옷 챙기고, 자식들 보듬어 주던 손가락보다 두툼한 손바닥이 넉넉해서 나도 따뜻했다 손등에 돋아난 얼룩이 나이만큼 늘어나고 새끼손가락 마디가 만지면 통증이 찌르르해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하품이 터진다

좋은 글 202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