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벗으면 - 권복례 안경을 벗으면 - 권복례 안경을 벗으면 일상이 훨씬 가벼워진다 흔들리는 나뭇잎이 그렇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그렇고 내 어깨위로 내려앉는 삶의 무게 또한 그렇다 다시, 부드러운 수건으로 안경을 닦고 세상을 바라보면 거기, 낡은 행주치마처럼 구겨진 나의 일상이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한 낡고 빛바랜 행주치마를 표백하고 다림질하면 일상이 훨씬 가벼워지려나 좋은 글 2024.01.29
복수초 - 김승기 복수초 김승기 겨울을 지내는 동안 가슴 속에 지긋이 눌러 품고 있던 지구의 불덩이 그 솟구치는 힘을 천천히 얼음 녹이며 노랗게 꽃으로 피웠구나 봄을 제일 먼저 가져다주는 너는 해맑은 눈동자를 지닌 아가의 얼굴처럼 방긋 웃고 있구나 毒을 가슴에 끌어안아 약으로 발효시킬 줄 아는 사랑 또한 가지고 있구나 너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달픈 내 영혼이 벌떡 일어나 두 팔 벌려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불춤을 추게 하는구나 그래, 그렇지 우리 모두 누구든지 어깨를 함께하여 우주를 한 아름 끌어안고 이 땅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福춤을 추자꾸나 너와 나 메마른 가슴밭을 파랗게 적시는 사랑춤을 추자꾸나 봄을 준비하며 지금까지 인내를 깨물어 온 고독한 복수초를 위하여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 좋은 글 2024.01.26
매화꽃 피는 날엔 / 정심 김덕성 매화꽃 피는 날엔 / 정심 김덕성 눈 오는 날에는 눈 속에 감싸인 매화가 그리워진다 눈 속 송이송이 매화꽃 품고 콧노래라도 불렀으면 싶다 절망도 뛰어 넘은 세월 옹골찬 가지 끄트머리에 매달려서 삭풍 속에서 맨몸으로 피어난 하얀 백설로 싸인 매화 눈 속에 파묻힌 절세미인 엄동설한에 맑은 향기를 간직한 몸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올곧고 결백한 성품이란다 매화꽃이 피는 날엔 눈을 맞으면서라도 어디든 달려가 서로 얼싸 안고 매향에 취해 사랑앓이를 하고 싶은데 좋은 글 2024.01.25
겨울나무 - 목필균 겨울나무 목필균 해 묵은 느티나무, 하늘에 그물을 치면 바람이 머물러 음계를 타고 까치도, 까마귀도 쉬었다 간다 살아온 세월만큼 늘어난 잔 가지 끝마다 혹독한 찬바람이 머물러도 함박눈 내려 소복이 쌓이면 너른 가슴 내어주던 여름날처럼 너도 나도 따듯한 우리로 품어준다 좋은 글 2024.01.23
구석에게 - 김대호 구석에게 - 김대호 구석을 혈육 보듯이 본다 구석을 보면 너 밥은 먹었니? 하고 묻고 싶어진다 구석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빛나는 것을 구석에 배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찬밥 한 덩이로 웅크린 구석들 눈물을 닦고 코를 푼 휴지를 너에게 주마 씩씩하게 밖을 향해 나가는 내 발걸음 소리를 또한 너에게 남기마 내가 구석이 되어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발걸음과 쓸쓸을 내가 기억하게 해다오 좋은 글 2024.01.22
별목련 / 김승기 詩人 한국의 야생화 시집 (1)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별목련 겨울이 많이 추웠을 거야 잎보다 꽃을 먼저 내밀어 하늘 끝을 하얗게 물들이우는 걸 보면 피우는 열정만큼 멋스럽게 지우고 싶었을 거야 그렇게도 빛나던 순백의 넋을 세상에서 가장 추하게 짓이겨 버리는 걸 보면 피울 때처럼 지울 때도 빛을 내는 그 눈부신 희열감 무엇이 그런 순정을 바치게 하였을까 사랑해야지 아낌없이 피우고 아낌없이 지우는 너의 사랑법을 배우며 별꽃 피는 가슴을 만들어야지 필 때 눈부신 만큼 추하게 진다는 것을 그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감추지 말아야지 지금도 저렇게 하늘 한 가운데를 눈 시리게 꽃물 들이고 있는데 ※ 별목련 : 목련과의 낙엽성 활엽 소교목으로 중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 각처에서 관상수로 심는다. 나무껍질.. 좋은 글 2024.01.19
고드름 - 다서 신형식 고드름 - 다서 신형식 시린 밤 내내 네 집앞 기웃거린 죄로 하 많은 세월 물구나무서기 해서 살아도 그대 앞에선 결코 얼굴 붉히지 않겠다 내 사랑의 마지막은 날카롭게 그대를 겨누고 있지만 본심은 그게 아니었음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다. 그대 안에 꽃 피우기 위해서라면 가장 양지 바른 날 열렬함의 이름으로 깨끗이 녹고 말겠다. 똑,또옥 그대 속내만 몇 번 두드려 보고 좋은 글 2024.01.18
생각하기/鞍山백원기 생각하기/鞍山백원기 누구나 생각하며 살지요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기왕이면 나쁜 생각 버리고 좋은 생각으로 살아야지요 마음 굳게 닫기보다는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 차디찬 냉혈의 눈빛 버리고 따스한 온혈의 눈빛으로요 이래라저래라 하기보다는 서로에게 달려와 주는 삶 너 좋고 나 좋은 생각만 하고 희망찬 경쾌한 걸음으로 행복이 넘치는 날 되세요 좋은 글 2024.01.15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물봉선 - 백승훈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물봉선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늦여름 물가에 피어 있는 물봉선을 만나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봉선화 연정'입니다. 습지나 물가에서 많이 자라는 물봉선은 봉선화과의 식물답게 열매가 익으면 손가락으로 씨 주머니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씨앗들이 사방으로 튀어 날아갑니다. 그런 특성 때문인지 물봉선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은 오만한 이기심으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물길을 가로 막아 거대한 댐을 만들기도 하고 산을 허물어 골프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어쩌면 물봉선의 꽃말은 이 땅의 초록 목숨들이 내지르는 비명인 동시에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우치려는 자연의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 좋은 글 2024.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