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892

북한산에서 만난 바위말발도리 - 김승기

북한산에서 만난 바위말발도리 - 김승기 비 그친 여름 새벽 북한산을 오른다 서울 나들이 때마다 친구들 입에서 「우리에게도 설악산에 버금가는 산이 있다.」기에 짬을 내어 함께 오르는 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딛는 발끝에서 아침해 떠오르고 내게로 달려드는 물소리가 서늘하게도 뼈마디를 콕콕 찌른다 가파른 산일수록 참나무는 꼿꼿이 허리 세우고 반가웁다, 소나무가 앞을 막아선다 앞서던 발길 멈추고 만나는 나무들 인사하며 「서울에도 산이 있구나.」 혼잣말로 가슴 속을 씻어 내린다 밤새 비 맞은 오리나무가 팔이 아프다고 무겁게 잎을 휘저을 때 후두둑 떨어지는 이슬에 뒤따르며 얼굴 들다 콧잔등을 맞은 친구는 「어라, 비 오네.」 안타까워할 때 「아니야, 때묻은 짐승들 한 무더기 올라오면서 산을 더럽힌다고 침 뱉는 거야...

좋은 글 2024.03.01

어디쯤 와 있을까 - 송정숙

어디쯤 와 있을까 기차 타고 남쪽으로 봄을 찾아 나섰다 어디쯤 와 있을까 건너편 보이는 능선에 있을까 저 들판 끝쯤 왔을까 홀로 누운 저 무덤가에 먼저 와 있을까 스님 목탁 소리 봄을 불러와 통도사 홍매화는 피었는데 낮은 담장 어느 곳에도 매화는 기웃 거린다는 데 부드러운 봄기운은 바람결 타고 씨앗으로 산,들로 신나게 비행하다 눈 맞으면 슬며시 앉아 두런두런 한 살림 차리네

좋은 글 2024.02.29

열쇠 - 문설

열쇠 - 문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땅속의 고요 슬며시 밀어 올리자 마당에 고인 햇빛 출렁입니다 대추나무로 향하던 바람 한 자락 땅의 가슴 쓸어 당신을 깨우고요 겨울의 손길 스친 자리마다 꼭꼭 닫아건 입들 닫힌 것은 문일까요 내 마음일까요 아무도 열려 하지 않습니다 새들 날아와 허공의 소리 비틀어도 손안의 비밀 감출 수 없습니다 당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화분 밑에서 약속을 꺼냅니다

좋은 글 2024.02.27

춘삼월 길에 서서 / 정심 김덕성

춘삼월 길에 서서 / 정심 김덕성 창문을 노크하는 빗소리 부드러운 봄 마중 소리 들려오고 봄소식을 전하는 반가운 봄비 내 마음 황홀하게 하는데 봄의 팡파르 울린다 살짝 얼굴 내민 붉은 홍매화 봄의 앞장 서 봄을 알리는 목련 봄의 서곡과 함께 춘삼월에는 동면에서 깨어나는 만물과 함께 나도 깨어나 봄 꾸미고 싶다 두절되었던 친구에게 메일이나 전화로 우정을 나누며 서운 했던 감정도 미움도 말끔히 봄비에 씻어버리고 대나무처럼 마음을 비우고 사랑의 끈을 매어 함께 살고 싶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좋은 글 2024.02.26

능소화 - 김승기

능소화 - 김승기 그대 눈물을 보이지 말어. 휘어지는 가지 끝에 매달려 겨우 참아 내는 어지럼증은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불어대는 나팔소리에 바람이 흔들리고 하늘이 흔들리고 있잖아.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하늘을 좀더 가까이하려고 온 힘을 다해 나팔을 불었기에, 처음 피었을 때의 모습으로 깨끗하게 떨어지는 것 아니겠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내게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 지금도 하늘에서 새가 되어 날고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날다가 비가 되어 들로 내리고 산으로 내려 다시 꽃으로 피면서, 웃음이 아지랑이로 피어나고 있잖아. 그대 눈물을 보이지 말어. 들에서 산에서 홀로 피는 모습도 좋겠지만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듯이 처음과 끝을 그대 곁에서 함께 하고 싶어. 힘껏 부는 나팔소리에 바람..

좋은 글 2024.02.23

매화꽃 필적에 - 靑山 손병흥

매화꽃 필적에 - 靑山 손병흥 고독과 그리움이 쓸쓸함으로 묻어나는 설중매 한겨울 추위 속 피어나는 한송이 매화 아련함 세찬 바람 빗줄기에 젖고서도 눈처럼 해맑은 모습 밤새내린 하얀 눈밭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기고픈 온통 치갑게 스며드는 한기마저 멋진 풍경이 되어버린 점차 속삭이는 봄기운이 조금씩 완연해 지는 나날들 스치는 바람결에 전해지던 설렘 맑은향기 고운 꽃 망울 따스해진 양지 녘 햇살에 꽃잎먼저 피워내는 봄 꽃 꽃 중의 꽃 흰 꽃이 흰매화 붉은 꽃 피우는 홍매화

좋은 글 2024.02.22

춘설 - 정지용

춘설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좋은 글 2024.02.19

봄 오는 소리 / 정심 김덕성

봄 오는 소리 / 정심 김덕성 새벽인데 봄비가 내린다 창문에 흘러 내리는 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겨울잠을 자던 나뭇가지에도 바스락거리며 눈 틔우는 봄 오는 소리 비가 동토 녹이니 보들보들 흙냄새 향기롭고 산수유 목련 진달래꽃이 피어 봄꽃 향연이 열리겠지 봄비에 적신 가지에 잎망울 맺히면 꽃망울 떠지는 요란한 소리에 그리움이 솟아나 새봄의 심포니가 울리는 행복의 봄이 오겠지

좋은 글 2024.02.16

겨울비 / 용혜원

겨울비 / 용혜원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아우성으로 내리는 여름날의 소낙비와 다르게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는 이처럼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겨울비는 지금 봄이 오는 길을 만들고 있나 봅니다 긴 겨울이 떠나고 짧은 봄이 오더라도 꽃들의 활짝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봄이 오면 그대 내 마음에 또다시 그리움을 풀어 놓을 것입니다

좋은 글 2024.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