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l 한 걸음도 놓칠 수 없는 라오스ㅣ

HIIO 2013. 9. 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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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한 걸음도 놓칠 수 없는 라오스ㅣ 
메콩 강을 타고 시간은 흐른다
 

글/사진ㆍ김향미 (여행 작가) 

 

 



 

 

라오스가 ‘뜨고’ 있다. 라오스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뉴욕타임스」 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할 나라 1위로 라오스를 꼽은 이유를 알거다. 또한 그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할 것이다.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도 루앙프라방, 세계적인 카르스트 지형을 자랑하는 방비엥, 소수민족 마을을 체험할 수 있는 훼이싸이 등 가는 곳마다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으니 말이다.
 

 

라오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는 단연 메콩강이다. 메콩 강은 라오스 사람들에게 또 다른 ‘어머니’와 같다. 실제 ‘메콩’이란 말은 ‘메남콩’, 즉 ‘어머니 강’이란 단어의 준말이다. 그들은 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식수를 얻고, 그 물로 벼를 기른다. 낮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 수고한 몸을 강물로 식히고, 강이 만들어 낸 물길을 따라 한 생애를 흘려보낸다.
 

강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비엔티안이나 루앙프라방 같은 대도시를 만드는가 하면 강폭이 넓어지는 곳에서 시판돈처럼 수천 개의 섬이 모습을 바꾸는 비경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강은 라오스 사람들에게 길이고 밥이며 생명의 근원이자 도시의 기원이다. 그래서일까. 라오스 땅 모양도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을 닮았다.
 

라오스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고 느긋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사 바이디(안녕하세요).”라 말하는 얼굴엔 늘 미소가 번졌다. 그들과 하룻밤을 보냈던 오지마을 히늡에서 일이다.  


 


 

나는 ‘청소년 여행학교’란 이름으로 열세 명의 아이들과 라오스 여행 중 이었다. 방비엥에 사는 한국인 친구 ‘미스터 리’에게 라오스 시골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다 했더니, 이웃 주민의 고향 마을을 소개해 주었다.
 

두서너 시간 비포장 길을 달려 도착한 히늡은 붉은 황톳길을 따라 스무 채 남짓의 나무집들이 늘어선 작은 마을이었다. 돼지와 닭, 개와 오리가 아무렇지 않게 집과 길을, 빨랫줄 위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마을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죄다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마을 에 발을 들인 첫 외국인이었다.
 

때마침 그날은 마을에 우물이 생기는 날이었다. 게다가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손님까지 방문했으니 마을에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그날 저녁, 마을 초입부터 따라 왔던 돼지 두 마리가 낯선 이방인들을 위해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을 다했다.
 

어느새 마당에는 찐밥과 술을 올린 상이 차려졌다. 수저없는 밥상. 아이들은 현지인처럼 손으로 밥을 주물럭거리다가 쏘옥 입으로 가져갔다. 돼지털이 숭숭 박힌 고깃덩이를 잘도 씹어댔다. 한국 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서너 명씩 짝을 지어 현지인의 집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라오스 산골 마을의 첫 이방인이 되어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은 밤사이 겪은 에피소드를 쏟아놓기 바빴다.
 

“하영 언니가 눈에서 렌즈를 빼니까 가족이 죄다 눈이 똥그래지면서 놀라 더라고요. 우리가 더 놀랬어요.”
 

“저녁 내내 온 가족이 우리만 뚫어질듯 쳐다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어요.”
 

“새벽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더니 아이들이 저를 삥 둘러 내려다보고 있는 거예요!”
 

“밤새도록 닭들이 울어서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가족이 우리에게 잠자리를 내주고 닭장에서 잤다지 뭐예요. 그래서 밤새 닭들이 울었던 거예요.”
 

다들 씩씩했다. 말이 안 통해 답답해 하긴 했어도, 내 염려와 달리 잠자리가 춥고 냄새 난다고, 화장실이 없다고 불평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 주는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라오스에서 한 뼘씩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었다.
 

여행학교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라오스가 많이 좋았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며 라오스의 강과 사람들의 미소, 여행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공부하다 힘들 때면 여행 때 썼던 일기를 펼쳐 보며 기운을 차린단다. 라오스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버거운 삶을 견뎠던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삶, 다른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나는 여행자들이 라오스를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곳에 특별한 무엇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특별할 게 없는 그곳이 좋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선 오롯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이고 필요없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지금껏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이 먼지를 걷고 새롭게 빛이 날 때, 비로소 자신을 향해 “사바이디(안녕).”인사를 건넨다. 

 

 

 김향미 님(1969년생)은 결혼한 지 10년이 되던 해 문득 미뤄둔 꿈이 생각나 남편과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967일 동안 47개국을 돌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여행 에세이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를 썼습니다. 지금은 늦깎이 초등 교사를 꿈꾸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제주도에 살고 있습니다.
 

 

「행복한동행」 2013년 8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