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덩굴장미의 기억 - 信士 박인걸
초록 물결이 담장을 넘던 오후
덩굴장미는 선혈 같은 입술로 계절을 태우고
우리는 생의 가장 뜨거운 한복판에서
태양 한 덩이를 목구멍 깊이 삼키며
서로의 가시까지 사랑했었다.
붉은 꽃잎 뒤로 그림자가 길어질 즈음
바람 끝에 실려 오던 향기는
아름다움이 먼저 흘리는 눈물이었을까.
눈빛마다 이별이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끝내 눈을 감지 못했다.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앙금은
오래된 빗물처럼 투명해지고
불꽃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자리에는
말없이 저녁 빛을 끌고 가는 강물만 흘렀고
사랑은 한때 세상을 밝히고 사라지는
짧은 섬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월의 장미가 마지막 열정을 토해내는 저녁
비워진 가지 끝에는 서늘한 달빛만 맺혀 있다.
깨지기 쉬웠기에 더욱 찬란했던 날들
내 마음의 오래된 소년(少年)적 화첩 사이에
곱게 끼워두었던 마른 꽃잎 한 장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계절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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