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티베트 라싸 여행후기 -1 서안-秦陵地宮(진릉지궁)

HIIO 2018. 4. 29. 18:13

티베트의 라싸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직접 라싸에 갈 수 없기때문에 서안이나 북경 등에서 들어가야한다.

우리는 서안을 거쳐 가기때문에 첫날 서안지역을 둘러보고 다음날 라싸로 향하게 된다.

서안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환승안내판이 있는데 외국어를 중국어로 표기한 것이 재미잇다.  파리(巴黎)에 리가 려(黎)인데 중국어로는 리로 발음되고 모스크바를 暮斯科(모사과)로 적은 것이 재미있는데 중국어로 읽으면 무스커로 비슷하다.

공항에서 서안으로 들어갈 때 중간쯤에 황하의 지류인 위하(渭河)를 건너는데 강태공이 낚시를 하던 강이란다. 실제로 강태공조어대(姜太公釣魚臺)는 시안에서 200Km 떨어진 반계진의 반계천이다.

먼저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식당 근처에 絲綢之路展覽館(사주지로전람관)이 있어 예정에 없는 구경을 한다.

絲綢之路(사주지로)는 실크로드를 말한다.

실크로드를 개척한 기원전 2세기 한나라의 장건(張騫)동상과 흉노족을 물리쳐 실크로드 건설에 공을 세운 한나라 장군 진탕(陳湯)의 동상이 있고 그 뒤에는 청동으로 만든 벽화가 있다.


먼저 식당에 들어가는데 식당의 통로 벽에 한자로 된 서화가 붙어있다. 청나라 강희제때 지어져 지금도 사용되는 중국 아동교육용 경전인 弟子規(제자규)의 내용이다.

亲爱我 孝何难 亲憎我 孝方贤 (친애아 효하난 친증아 효방현) -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할때는 효도가 어려운 일이 아니나 자신을 호되게 대하는 시절이 오면 안심시켜드릴 방안들을 찾아야하느니라하는 제자규 11장의 내용도 있고 事虽小 勿擅为 苟擅为 子道亏(사수소 물천위 구천위 자도휴) - 작은 일이라도 제 멋대로 하면 안되며 만약 제멋대로하여 일이 잘못되면 부모에게 누가 되느니라는 제자규 7장의 내용이다. 또 父母呼 应勿缓 父母命 行勿懒(부모호 응물완 부모명 행물란) - 부모가 부르면 즉시 답해야하고 부모가 일을 시키면 게으름피면 안된다는 3장의 내용도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제자규를 도입하여 학교 한자교육에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실크로드전람관 주변을 더 돌아보는데 건물 앞 좌측에 실크로드와 관련된 사람들의 동상이 서있다.

실크로드를 개척한 한나라 장건(張騫)의 다른 동상이 있고 청나라때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좌종당(左宗棠)의 동상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 동상은 왜 있는거지???하고 찾아보니 서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신장을 점령해 중국에 편입시킨 인물이다. 기원전 한무제때의 명장 곽거병(霍去病) 동상을 보고 전람관을 떠나 근처에 있는 진릉지궁으로 간다.


14:30 秦陵地宮(진릉지궁)에 도착하여 한자와 영어로된 안내판을 잠시 보고 지궁으로 입장한다. 진시황릉은 찾았지만 진시황의 관이 있는 묘 부분은 아직 발굴을 못했기 때문에 기록에 따라 이곳에 묘를 재현하여 전시해 놓은 곳이다.

입구 근처에는 당시 사용하던 무기와 생활용품들을 전시해 놓았고

前言이라고 써진 명판이 있다.

그 옆에는 강아지처럼 생긴 이 동물이 있는데 호적이라고 한다.

이어서 그 당시에 사용하던 상형문자를 옥돌로 조각해 전시해 놓았고 지붕 밑에 여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상형화한 집 家(가)자가 돋보이는데 집에는 여자가 있어야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화폐와 도량형 통일이라는데 당시에 사용된 저울의 고리 모양의 무게에 따라 크기가 다른 고리형 추가 나열되어있고 밑에는 길이를 재는 자가 보인다. 동전으로 만든 화폐도 모형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진시황은 도로와 수로를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의 국도처럼 도로를 규격화한 것도 그의 업적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또다른 형태의 무게를 달기위한 추도 보인다.

진시황릉에 있는 진시황이 타던 마치를 전시해놨는데 가이드는 스포츠카 정도라고 얘기하고 그 옆에는 진시황의 전용 마차도 보인다. 전시물의 재료는 전부 옥돌로 보인다.


지하로 내려왔는데 진릉지궁의 지하는 25.7 미터 높이로 지하 2층으로 나뉜다,

입구 근처에 있는 불쌍해 보이는 여자그림은 만리장성 공사에 끌려와 공사에 참여한 남편을 찾으러 왔던 몽강녀(夢姜女) 전설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조명은 어두침침한데 지하 중앙에 진시황릉을 묘사해놓았고 산처럼 보이는 릉 앞에 아방궁(阿房宫)이 있다. 진시황릉은 13세부터 만들기시작해서 49세에 죽은 후 아들 호해가 즉위 2년후에 완성했고 연인원 70만명이 동원되었다.


아방궁 모형 앞에 안내 표지를 세워놓았는데 편전(便殿)은 손님을 만나거나 정사를 보는 곳이고 침전(寢殿)은 황제가 잠자던 곳이다. 우측에는 하인이나 궁녀들의 숙소가 있고 아방궁 뒤편에는 진시황을이 있는 여산(酈山)을 묘사해 놓았다.

아방궁의 동쪽편에는 성을 지키는 守陵部队(수릉부대)의 병영이 있는데 동쪽방향에 당시 주적인 돌궐족이 있기 때문이다.

밀랍인형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시황의 장남인 부소상이 보이는데 그는 18번째 아들인 호해(胡亥)에게 왕위를 뺐겼다. 모사꾼 조고가 유서를 조작하여 이세황제(二世皇帝)에 호해(胡亥)를 올리고 부소는 자살하게했다.


공사에 동원되어 노역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인형도 보인다. 말과 마차를 만드는 장면도 있는데 순동으로 만들었으며 기술적 문제로 실제 크기의 1/2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의 일반적인 재료는 청동이었고 청동 작품은 실물크기로 제작이 가능했다.

황릉을 지키는 병용(兵俑)에 채색하는 모습도 있다. 모든 토용과 병마용은 채색이 되어있었는데 후에 산화되어 색이 바래버렸다고 한다.

토용과 병마용을 만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하체, 상체, 머리 부분을 나누어 만들었으며 얼굴은 약 8가지 복제 틀을 사용해 제작하였다.

기본형에 수염 등 세부적인 변형을 가해 개개인이 전부 달라 보인다.

진시황의 아방궁을 만드는 공사현장 모습이 묘사되어있고 부역자와 헤어진 가족들의 모습이 같이 묘사되어있다. 작업자들은 세금을 못낸 사람들이 부역하도록 하였다. 쓰러진 작업자와 이를 통제하는 감독관들의 모습도 보인다.

지하궁전에 투입되었던 실물크기의 기술자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2만명 정도가 투입되었고 황릉의 비밀을 지키기위해서 한명도 살아나온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한층 더 밑으로 내려가면 중앙에 진시황의 관 모형이 있고 묘지 주변에 보이는 흰색은 수은으로 만든 강으로 도굴과 부패를 방지했다. 조명이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조잡한 모습을 감추려 한 것이 아닐까하고 의심하게 된다.

천정의 그림은 삼황오제가 묘사되어 있는데 중국에서 인간을 창조한 여신인 여와(女媧)와

남자는 농사짓는 법을 전수해준 복희(伏羲)이다. 벽에는 빙 둘러서 여러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는데 진시황이 출근하는 장면등이 묘사되어있고 각국의 사신들과 잔치하는 장면, 아방궁에서 진시황이 생활하는 모습등을 묘사했다.

어두운 지하 전시실을 나와 이제 실제 진시황릉이 있는 곳으로 간다.


서안 진릉지궁 동영상으로 보기 클릭 https://youtu.be/9I3u8ydZv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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