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관광을 위하여 8시에 호텔을 출발한다. 1992년에 프라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록되었고 그 뒤로 프라하 전체가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관광수입이 체코 국가재정의 30%를 차지한다. 프라하가 체코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프라하 GDP의 80%가 서비스 산업이라니 그럴만 하다. 학교 다닐 때 체코슬로바키아로 배웠는데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전쟁없이 분리독립했다.
8시 12분 프라하성쪽으로 올라가는 길의 전신주에 삼성광고가 줄줄이 붙어있다. 가이드는 이곳 광고를 독점으로 하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프라하 성은(체코어:프라슈스키 흐라트 Pražský hrad) 프라하의 상징이자 체코의 상징이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옛성이고 길이는 약 570 미터, 폭은 약 130 미터에 달한다.
북문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헤미아 왕국의 소베슬라프 1세가 1,135년에 지은 구왕궁(Stary Kralovsky Palac)이 있는 제2중정이다.
오른 쪽 빨간 지붕이 끝나는 깃발이 펄럭이는 곳이 대통령집무실이다. 구왕궁은 지금도 체코 대통령의 취임식등 체코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중요한 장소이고 광장의 십자가가 있는 곳은 합스부르크가왕가의 전용기도실이었던 성 십자가 교회인데 전에는 중요한 유물을 보관하는 보물실로, 현재는 관광 안내 센터로 사용되고 있단다. 성십자가교회의 벽에는 성인들 동상이 있는데 동상의 위에 있는 황금색현판에 적혀있는 글을 번역해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리라"이다.
제3정원(Treti nadvori)으로 들어 서면 공사기간만 600년이 걸린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ala svateho Vita)이 우리를 압도한다. 크기가 124m(407피트) X 60m(197피트), 타워의 높이는 96.5m(317피트)에 달하는 비투스성당은 1344년 부터 까를 4세가 짓기 시작해서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 낸 것은 1,928년 9월 28일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시작은 928년부터 독일의 헨리 1세로 부터 기증받은 성 비투스의 성해를 바츨라프왕(Svaty Vaclav)이 무덤에 묻고 그 위에 로툰다 양식의 교회 건물을 지으면서부터이다. 로툰다 양식이란 하늘에서 볼 때 원형의 구조를 가진 양식을 말하는 것인데 성인의 성해 위에 지어졌으므로 교회 이름은 성 비투스 로툰다(Svaty Vit Rotunda)가 됐다. 카를 4세때 대주교령으로 승격되었고 대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프랑스의 건축가겸 기하학자인 마티어스가 총책임자가 되어 성당의 건축이 시작된다. 마티어스가 사망한 1,352년부터는 23세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건축을 이어 받는데 파를러는 카를교를 건축한 독일 출신의 건축가이다.
14세기 고딕양식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성당 옆에는 주교관이 성당을 가리고있고 그 옆에 오벨리스크가 하나 서있다. 오벨리스크는 1918년 1차대전 종전 및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왕가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체코슬로바키아 독립기념물이다. 성당의 옆쪽에 왕이 드나들었다는 황금의 문과 오벨리스크 사이에는 용을 퇴치하는 성 게오르규 동상--영어로 성 조지(St. George Slaying the Dragon - Prague Castle, Third Courtyard)이 서있다. 그 맞은편으로는 구왕궁에 속한 블라디스라프홀이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를 제외하고 기둥없는 방으로서는 가장 큰 방이있으며, 이곳에서 기사들이 창싸움을 했다고 한다.
비투스성당을 보고나서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체코어: Tomáš Garrigue Masaryk [ˈtomaːʃ ˈɡarɪk ˈmasarɪk], 1850년 3월 7일 호도닌 – 1937년 10월 14일 라니)의 동상이 있는 흐라드차니 광장(Hradcanske namesti)으로 이동한다. 그는 체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1918년부터 4번 당선되어 1935년 병으로 사임할 때까지 역임하였다.
동상 맞은 편으로 영빈관으로 쓰이기도하는 대통령궁이 웅장하게 서있다. 대통령궁 정문(Hlavnibana) 위에는 한 거인이 다른 거인을 제압하는 타이탄 석상(Bojovat Titan)이 검은 모습으로 조각되어있는데 ‘오스트리아 제국이 보헤미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석상은 1,77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원본이 파손되자, 1,912년 보스믹과 프로차카에 의해 새로운 타이탄 석상이 세워졌다. 보헤미아인인 체코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석상인데 잊지않기위해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대신 정문 위의 아치는 화려한 황금색으로 되어있고 황금왕관 밑에 TMJ라는 이니셜이 새겨져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과 그의 아들 요제프 2세의 이니셜이다. 그녀는 합스부르크 군주국 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는데 1743년 5월 12일 비투스성당에서 대관식을 하고 기념물로 정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대통령궁 앞쪽으로 슈바르첸 베르크 궁전, 토스칸스키 궁전(이탈리아 메디치가문의 토스카나 공작에게 팔려서 이름이 유래 되었다) 그리고 대주교 궁전이 흐라드차니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대주교 궁전은 16세기에 건설되어 대주교 관저로 쓰이고 있고 로코코 양식으로 18세기에 개축되었으며 아마데우스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대통령궁의 좌측에는 페스트 퇴치 기념탑이 서있고 그 옆에는 프라하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매시간마다 대통령궁 앞에서는 근위병들이 교대식을 하는데 12시에는 좀 더 거창하게 한단다.
9시에 하는 간이 교대식을 구경하고 가이드 말로 나름 유명하다는 현악 4중주단의 길거리 공연을 잠시 구경한 후 잠시 쇼핑센터에 들르고나서 여행일정에 들어있는 프라하 트램(요금 24쿠나-1100원 정도 우리와 비슷하다)을 타고 내린 곳은 1968년 ‘프라하의 봄’과 1989년 ‘벨벳 혁명’이 일어나 자유항쟁의 중심지로 유명해진 바츨라프 광장(Václavské náměstí)이다.
길이 750미터 폭 60미터의 바츨라프 광장이 시작하는 곳에는 네오르네상스양식의 국립박물관이 우뚝 솟아있고 벽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이자 체코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바츨라프 하벨(President Václav Havel)의 대형 초상화가 Havel Navzdy(하벨이여 영원하라)라는 문구와 함께 걸려있다. 우리도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있는걸까....
구시가지 광장(Old Town Square)에 도착하니 10시 35분이다. 광장에 들어서니 부활절마켓이 열려 임시 설치된 가건물들이 광장을 메우고있고 구시청사 타워에 설치된 천문시계탑(Prague Astronomical Clock)이 우리를 맞는다. 1410년에 최초로 설치되어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천문 시계 프라하 오를로이(Orloj)는 1410년 까를대교수이고 천문학자인 얀 신델교수가 제작을 시작하고 1490년 시계장인 미쿨라슈가 이어받아 나머지 부분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작동하는 천문 시계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위쪽에 위치한 플라네타륨(Planetarium)은 천동설의 원리에 따라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연, 월, 일, 시간,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을 나타내고 아래쪽 칼렌다륨(Calendarium)은 보헤미아의 농경생활과 별자리를 12 계절별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음력과 비슷한 개념으로 농사일에 도움을 주고자 만든 것 같다.
칼렌다륨 왼쪽에 손거울을 든 여인과 돈자루를 든 남자인형이 있고 오른쪽에는 모래시계를 든 해골과 키타를 치고 노는 남자인형이 있는데 정각이 되면 해골이 줄을 당겨 시보를 알리고 나머지 인형들이 시간의 덧없음과 삶과 죽음의 슬픔을 나타내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이때 가운데 창에는 예수의 12제자가 돌아가면서 등장한다. 매시간 인형들의 퍼포먼스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리는데 쇼는 30초정도하고 끝나서 좀 허무한 관광거리인 듯하다. 12시에는 좀더 길게 한다고 한다. 시계를 자세히 보니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된 바깥쪽 시계는 당시 시간인데 기준시가 없던 시대기 때문데 지금과는 맞지않고 안쪽 로마자로 써진 시계는 지금의 시간과 딱 맞는다.
광장의 한쪽에는 얀 후스 동상(Jan Hus Monument)이 광장의 풍경을 내려다 보고 있다. 프라하대 총장이었던 얀 후스(1369-1415)는 면죄부 판매중단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1415년 7월 16일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자로 낙인찍혀 화형을 당한 사람이다. 100년이 지난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크에서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이루는데 루터는 얀후스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말하기도했다. 1915년 500주기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동상이다. 얀후스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후스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을 정도다. 바로 이곳이 전도연이 주연한 '프라하의 연인'에서 소원의 벽이 있던 곳이다.
천문시계탑이 있는 구시청사을 마주보고 있는 보통 틴성당이라고 부르는 교회의 원래 이름은 틴 성모마리아교회(Chiesa Santa Maria di Tyn)로 1365년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부패한 로마 가톨릭교회를 부정하고 종교개혁을 실천했던 후스주의의 거점교회였던 곳이다. 80미터의 뾰죽한 두 첨탑은 프라하 시내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데 높이 솟아 있는 쌍탑 사이에는 마리아상을 녹여 만든 후스주의의 상징인 황금성배가 있었다고 한다. 1961년 가톨릭성당으로 개조하면서 그 황금성배를 녹여 중앙탑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후광을 만드는데 사용했단다. 후스주의자들은 성만찬 때 신약성서의 최후의 만찬 이야기에 근거하여 빵과 포도주를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나누었다고 해서 포도주를 담은 성배는 후스주의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왜냐하면 옛날 로마 가톨릭에서는 사제들만 마실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구시가지광장 관광을 마치고 이동하여 Koba라는 한국음식점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해외여행에서의 한식식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11시 35분 식사를 마치고 또 하나의 구경거리인 까를교에 도착하니 웅장한 까를교탑(Bridge Tower)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다. 이 탑은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 통행세를 걷기 위해 지어진 것이란다.
까를교(Karlův most)는 블타바강을 건너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원래의 다리가 홍수로 유실되자, 카를4세의 명에 따라 1357년 시작해서 1402년에 황제전용다리로 완공된 길이 520미터 폭은 10미터의 블타바강에 놓인 다리중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 건축 책임자는 독일의 슈베비슈 그뮌트 출신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였다.
까를교 입구 우측에는 까를 대학, 성 비투스 대성당 등을 세운 프라하 황금기의 주인공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까를 4세(Karel IV)의 동상이 서있고 그 뒤편에 박물관이 하나 있는데 박물관의 문 아치에는 135797531이라는 숫자가 회문(回文, palindrome-거꾸로 읽어도 제대로 읽는 것과 같은 문장)으로 써있는데 1357년 9월 7일 5시 31분 까를교가 공사가 시작된 시간을 표시해 놓은 것이란다. 다리에는 30여개의 성인 상이 세워져 있으며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는 동상은 손길이 많이 닿아 반질 반질하다. 특히 8번째 동상인 성 요한 네포무크(Sanctus Ioannes Nepomucenus)상이 특히 그런데 네포무크 성인에 대해서는 체스키크롬로프편에서 기술한 바 있다.
까를교 앞쪽이 십자기사단 광장이고 광장에 면해서 프라하에서 프라하성에 이어 두번째로 큰 건물인 클레멘티눔 복합단지가 서있다. 클레멘티눔(Klementinum)은 1556년 황제 페르디난트 1세가 당시 틴 성당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후스파를 견제할 목적으로 예수회를 초청하여 도미니크수도원 자리에 만들게한 것이다. 현재는 성 살바토르 성당(St. Salvator's Cathedral)과 체코 국립도서관 및 국립기술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바로크 양식의 국립도서관은 2005년 유네스코가 최고의 도서관으로 선정한 바 있다.
12시 10분 까를교를 마지막으로 프라하 관광을 마치고 어제 밤에 봤던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 루돌피눔(Rudolfinum)을 지나 헝가리로 가기위해 버스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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