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百日紅) - 信士 박인걸 노란 백일홍 한 송이 서럽게 피어 있다. 그것은 도무지 금메달 같지 않고, 어미 잃은 병아리 같아 외롭다. 나는 솔방울 같은 씨방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꿈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어두운 구석에서 공포를 견디는 일이었으리라. 아직 푸른 핏줄조차 돋지 않은 하늘 아래서 잎은 여름 우박을 맞아가며 검푸른 문신을 새겼다. 그것은 주먹을 쥔 각오가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고독한 비명이다. 바람이 느티나무잎을 할퀴던 날도 도로 보수원 제초기 소리가 쇠붙이처럼 귀를 찢고 잡초들이 목이 잘릴 때 꽃줄기는 제초기의 칼날을 피해갔다. 쏟아지는 햇빛 아래 겁에 질린 채 마치 담벼락 아래 버려진 과자봉지처럼 짓궂은 새들이 잎사귀를 쪼아대고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가 등뼈를 짓누를 때도 백일홍은 하늘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