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일홍(百日紅) - 信士 박인걸
노란 백일홍 한 송이 서럽게 피어 있다.
그것은 도무지 금메달 같지 않고,
어미 잃은 병아리 같아 외롭다.
나는 솔방울 같은 씨방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꿈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어두운 구석에서 공포를 견디는 일이었으리라.
아직 푸른 핏줄조차 돋지 않은 하늘 아래서
잎은 여름 우박을 맞아가며 검푸른 문신을 새겼다.
그것은 주먹을 쥔 각오가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고독한 비명이다.
바람이 느티나무잎을 할퀴던 날도
도로 보수원 제초기 소리가 쇠붙이처럼 귀를 찢고
잡초들이 목이 잘릴 때
꽃줄기는 제초기의 칼날을 피해갔다.
쏟아지는 햇빛 아래 겁에 질린 채
마치 담벼락 아래 버려진 과자봉지처럼
짓궂은 새들이 잎사귀를 쪼아대고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가 등뼈를 짓누를 때도
백일홍은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것은 꿋꿋함이라기보다
땅 위에 내려놓을 시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루한 여름 장마와
콘크리트가 뿜어내는 혹독한 지열 속에서
목이 숯불처럼 타들어 갈 때에
꽃은 참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통을 속으로 삭이면서
마침내 견딘 만큼 활짝 피어났다.
그러나 징그럽도록 밝은 진노랑 꽃송이에서
나는 승리의 웃음이 아니라
겨우 살아남은 자의 지독한 슬픔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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