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이 피던 날 - 信士 박인걸
겨울의 유언을 물고 온 저 많은 입술과
금세 멍들 것 같은 저 봉인 된 슬픔이
새하얀 통증으로 허공에 박힌다.
세상의 소란을 잠재우고 모두 이곳을 향해
창백한 목을 빼 들고 부르는 집단의 합창
어느 생애 뒤안길에서 이토록 서성였던가.
눈부신 낙화의 예약 없이 꽃은 피지 않는다.
제 몸에 가시 같은 통증을 품고
오는 것은 가는 것의 다른 이름으로
기척도 없이 허공에 흰 획을 긋는다.
비린 생애를 건너온 저녁이 가지 아래 도착할 때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꽃잎이 아니라 몸이다.
한 시절 뜨거웠으나 이제는 넋이 된 구름들
지상에 처박힌 백색의 정적이 너무 깊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공허의 한복판을 본다.
피어나는 것은 이미 지는 운명을 깨닫는 순간
허공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응얼거림
나무가 쓴 경전은 흙빛으로 번지고
꽃이 진 자리마다 빈 바람의 눈동자만 남는다.
아! 봄은 깊어서 차라리 아파테이아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칠엽수 꽃 - 백승훈 시인 (0) | 2026.03.26 |
|---|---|
| 광릉요강꽃 - 김승기 詩人 (0) | 2026.03.24 |
| 현호색 - 백승훈 시인 (0) | 2026.03.23 |
| 개불알풀 - 김승기 詩人 (1) | 2026.03.21 |
| 매화(梅花) - 信士 박인걸 (0) | 2026.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