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꽃 - 信士 박인걸
그해 여름밤
고고한 달빛은 산골 마을을 무겁게 감싸고
북두칠성은 가칠봉에 비스듬이 걸렸는데
한여름의 적막을 조용히 가르며
반딧불이는 좁은 골짜기를 가로질러
여름밤을 곱게 수놓았다.
초가집 지붕에는 박꽃이 하얗게 웃고
풋 박은 박잎에 숨어 별을 헤아리고
황조롱이는 모기떼를 쫓아 낮게 비행하고
어디선가 짝 찾는 소쩍새 울음 처량했다.
마당 가엔 모깃불 연기 자욱하고
어린 송아지는 어미 소의 묵직한 품에 안기면
마루 밑 강아지는 벌써 꿈속에서 헤맸다.
줄줄이 피어난 지붕 위 박꽃은
소년의 어두운 가슴에 하얀 등불 하나를 밝혀주었다.
낡은 멍석에 벌렁 누워
은하수 물길 따라 내 막연한 꿈을 도회지로 띄워 보냈고
서쪽 하늘 너머의 도회지를 열망하며
몇 개의 박이 가슴에서 동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 돌이켜보면
박꽃처럼 맑고 위태롭던 소년의 꿈은
박넝쿨처럼 세상을 향해 억세게 줄기를 뻗어
대도시 한복판에서 육십 년을 굴러왔구나.
그러나 내 가슴 속 깊은 마을에는
아직도 그날 밤 초가집 지붕을 환하게 밝히던
그 하얀 박꽃이 피어 있구나.
지금도 피어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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