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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꽃 - 信士 박인걸

HIIO 2026. 7. 28. 09:09

원추리꽃 - 信士 박인걸

내 유년의 시간에는 산새들이 모여들었다.
무지갯빛 들꽃들이 길가 풀숲에 등불을 켜면
유난히 원추리꽃이 내 눈길에 오래 머물렀다.
등 검은 뻐꾸기 울음이 산골을 휘돌면
마을은 깊은 적막에 잠기고
그 고요 속에 원추리꽃은
조용히 계절을 피워 올리곤 했다.

어쩌다 원추리는 야생을 떠나
이 삭막한 도시공원까지 흘러왔을까.
비바람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며
콘크리트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도
한 줌 햇살을 품어
불꽃 같은 생명을 피워 올린다.

새벽별 머금은 꽃잎은
이름 모를 그리움 앓는 소녀처럼
가냘프고도 애틋하다.
흙냄새 넘치던 고향 냇가
아지랑이보다 먼저 피어나던 그리움들
기억 속 그토록 맑던 한 소녀의 얼굴처럼
끝내 부르지 못한 이름 하나 가슴에 묻은 채
소박한 봉오리는
오늘도 슬프도록 환한 미소를 머금는다.

참매미 울음이 강을 건너오던 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주황빛 환한 미소로 들녘을 물들이던 꽃
세월은 나를 도시로 데려왔지만
내 마음 가장 깊은 빈터에는
여전히 고향의 냇물이 흐르고
유년의 냇가에 소복이 피어난 원추리꽃이
해마다 처음 보는 꽃처럼 곱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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