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국 서안 여행 - 중원으로 가다 2일차

HIIO 2013. 7. 11. 00:36

 

이번 여행기간은 6월 23일부터 27일까지이다. 이곳은 더울 때는 38도까지 올라가는 기간이다.

다행이 우리가 있는 기간은 보통 30도 내외였다. 그래도 더운 날씨인데...

오늘은 2일차로 서안여행의 핵심인 진시황릉발굴지와 양귀비의 유적인 화청지를 보는 날이다.

병마용과 화청지는 AAAAA(5A)급 관광지이다.

중국은 1A 부터 5A까지 관광지를 분류해놨는데 2013년 현재 156개이다.

우리가 간 섬서성에는 5개가 있는데 이번에 3개를 보게되고 1개는 주변만 본다.ㅠㅠ

4A급은 섬서성에만 49개이다. 그러니 4A급은 보면 좋고 5A는 꼭 봐야할 곳들이라고 생각하면된다.

 

 

5개는

西安秦始皇兵马俑博物馆--보고
西安华清池景区--보고
延安黄陵县黄帝陵景区--가보지도 못하고
西安大雁塔-大唐芙蓉园景区--껍데기만 보고
渭南华阴市华山景区--옵션으로 보고

 

먼저 화청지로 간다.

 

상좌는 출발시 호텔앞 모습. 어제 입국하고 여행하느라 피곤하다고 오늘은 10시 출발...

상우는 5일간 우리가 타고다닌 버스다. 기사가 교포인데 말없이 친절하다.

하좌는 화청지앞에 있는 양귀비가 놀아나는 조각상.

하우는 화청지 입구모습이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파란색옷 입은 분도 일행인데 나이가 81세란다.

정정하게 잘 다니시는 모습이 부럽다.

 

  화청지는 여산 북쪽 기슭, 진시황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상좌는 화청지 500미터 전에 있는 骊山景区(여산경구) 입구이다. 4A급 관광지.

입장료가 110위안. 이번 여행에서 입장료를 전부 계산해봐야겠다.

입구를 들어서면 부용호(芙蓉湖)가 관광객을 맞는다.(하좌) 연꽃 부, 연꽃 용..연꽃호수이다. 건너로 보이는 건물은 장생전...오래살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건물 뒤로 보이는 산이 여산이다. 당태종 이세민의 사냥터였단다. 우리 일정에는 빠져있어 올라가지는 않는다. 케이블카도 있는데...

부용호에는 연꽃이 많이 피어있다.(하우)

 

 

베이징에 있던 황제들에게 더운 여름을 나던 청더(承德)피서산장이 있었다면 시안(西安)에 있던 황제들에게는 추운 겨울을 나던 피한(避寒)별장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화청지(華淸池)이다.
화청지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으로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좋은 지하 온천수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일찌기 서주(西周)시기, 주유왕(周幽王)이 이곳에 려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무제도 이곳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특히, 당 현종 천보년간(서기 730~743)에 건설한 궁전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華淸宮)"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현종은 양귀비와 놀아나던 바로 그 황제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부용호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다시 호수가 하나 나온다. 구룡호(상좌)

저녁에 와서 볼 장한가무쇼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뒤쪽으로 관람석이 있고 보이는 건물은 비상전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침소로 쓰이던 곳이다.(상우)

300년이 넘은 석류나무를 보면서 계속 왼쪽으로 가면 양귀비가 온천에서 목욕하는 동상이 나온다. 중국의 4대미인 중의 하나라는데 기록에 보면 키가 162에 몸무게가 72였단다. 잘 이해가 안되지만 그냥 넘어가자.

중국의 4대미인???

 답: 춘추전국시대의 서시(西施), 한나라의 왕소군(王昭君),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마지막으로 당나라의 양귀비(楊貴妃)를 꼽는다. 

동상우측으로 가면 드디어 양귀비가 온천욕을 했던 귀비지 건물이 나온다. 욕조만 옛날거고 건물은 새로 진거란다.

 

 

귀비지안의 탕 내부(상우). 들어가는 입구가 두개이니 같이 들어가 목욕을 하는곳이라나 뭐라나.

귀비지를 나오면 양귀비가 머리를 감은 후에 젖은 머리를 말렸다는 정자가 나온다. 이름하여 양발대(상우)

여러개의 탕이 있는데

양귀비가 사용한 해당탕은 온천에 몸을 데우고 난 이후 좌훈을 했던 장소이다.
황제가 사용한 연화탕, 태자들이 사용한 태자탕 등 20여개의 개인용 온천탕이 있다.
탕도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다. ‘성진탕’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이세민이 목욕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의 낙차로 몸을 시원하게 해 주었던 ‘마사지 탕’도 있다.
또 발꿈치를 씻도록 되어 있는 ‘시녀탕’도 있다. 시녀탕은 특히 황제의 음식을 만드는 시녀들이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다.

 

지금도 온천수가 나온다.(아래) 6천년을 마르지않고 43도를 유지하며 계속 나온다는 온천수에 손만 씼어본다.

 

온천탕 지역을 나와 왼쪽으로 더 가면 오간청이 나온다.

 

 

망호루(상좌)를 지나면 오간청이 나온다.(하좌)

원래는 양귀비가 피부미용과 아름다움을 연구한 건안제이다. 화청지 뒷켠 려산기슭 깊숙이 자리잡은 궁중의사들의 연구실 겸 서제이다.
지금은 이곳을 五間廳(5칸집)이러 부르는데, 서안사건으로 볼모로 잡힌 장개석을 이곳 5칸에 억류한 곳으로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여기서 녹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제법 맛있다) 화청지를 나왔다.

 

 

 

 

화청지 주변의 구조물들...

석류도 있다.(좌하)

오늘 점심은 특식으로 교자연인데 만두를 10종류쯤 준다...먹을만한 것도 있고...아닌 것도 있고...

 

 

점심을 먹고 진시황릉으로 간다.

진시황릉에 가기전에 먼저 쇼핑을 하나 한다.(첫번째 사진) 신발깔창부터 건강용품까지 이거저거 파는 완전 잡화점... 간단한 선물 사기도 괜찮을 듯... 여행일정에 보면 쇼핑이 5군데가 들어있다. 저가여행의 비애??

필요한 거만 사면 된다. 이번 가이드는 두군데를 데려갔다.

커다란 진시황제동상이 서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5성급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서있는 곳..(두번째)

가이드가 표를 끊어오는 동안 기다리고... 병마용과 합쳐서 150위안( 지금까지 누계 260위안) 4번째 사진.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진시황를 입구로 이동한다.(세번째 사진) 10분 이내 이동...

 

 

 

 입구를 들어서서 세계문화유산 지정기념비 앞에서 인증사진을 한장 찍고....

시간이 많으면 운동삼아 걸어도 된다. 그런데 볼 것도 없고 시간도 별로 없다.

그러면 전동관람차를 타면 된다. 15위안-3000원이면 한바퀴 돌려준다.(상우)

현재 발굴중인 주변의 발굴현장지하건물 2군데서 내려서 보게 해주고 한바퀴돈다. 30분정도..

진시황릉은 아직 실제적인 발굴이 시작도 되지않아서 정말로 볼게 없다.

야산같은 것이 하나 덩그마니...(하우)

하지만 우리 눈에 야산으로 보이는 것이 무덤이라니 크긴 참 크다.

주변 나무들이 수은에 중독되어있고 무덤 속 장치가 위험해서 아직 발굴하지 않는단다.

하여간 중국은 두고두고 우려먹으면 관광수입 올릴 것이 또 하나 있는셈이다.

발굴도 않했는데 이렇게 관광객이 찾아오는데...하물며...

진시황릉을 나와 아까 그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입구를 들어서면 다시 전동차를 타고 5분정도 이동한다.(5위안 자비부담)

그래야 진짜 입구가 나온다...넓기도 넓어...ㅋㅋ(상좌)

먼저 기록영화를 관람하게 하는데 360도의 벽을 둘러싼 원형스크린이라 어지럽다. 계속 반복상영한다.(상우)

그리고 나서 제1병마용으로 들어가면(하좌) 진시황릉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지형도가 만들어져있다.

진시황릉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병마용갱은 그러니까 진시황릉을 지키는 외곽부대 개념인거다. 거리를 계산해보니

진시황릉 자체가 하나의 도시개념으로 만들어졌다는 감이 잡힌다.

거기에서 고통을 겪었을 국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당시 병사들의 실제 모습을 모델로 제작했다는데 모두가 얼굴과 형태가 다르고 평균신장이 180정도 라는데

당시 사람들이 왜소하다는 인식과 사뭇 다르다. 당시에 덩치가 큰 최고의 병사들을 뽑아서 모델로 썼을거라는 추축이 설득력을 갖는다. 순장을 안시킨 것만 해도 엄청 다행이지....

역시 중국다운 규모에 놀라고...

아직도 발굴복원 중이다.

발굴되서 복원을 하는 중인 토용들(하좌)과 토용마(하우)

 

 

계소 2, 3호갱과 박물관까지 돌아본다.

앉아있는 병사(가운데)의 신발바닥의 무늬까지 섬세하여 보는 이들은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병마용에서 발견된 청동마차(상우)

 

진시황은 기원전221년에 10년간의 겸병전쟁을 통해 크고 작은 제후국들을 정복하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이 넓고 민족이 많으며 통일된 중앙집권 봉건왕조를 걸립했다. 그는 스스로<시황제>라고 칭했다.
진시황은 황제의 보좌에 오른후 얼마 안되어 현 섬서성 서안시 림동 려산 북쪽에 자기의 릉묘를 수건하기 시작했다. 묘지는 산을 등지고 강물과 면한 풍수가 아주 좋은 곳이였다. 릉원은 내외 두개 성으로 나뉘었는데 지상 건축은 이미 사라졌다.

릉묘는 수건시 높이가 120미터, 부지의 둘레의 길이가 2167미터였다. 2천여년의 풍습과 파괴를 거쳐 현재 릉묘의 높이는 76미터, 부지의 둘레의 길이는 2천미터로 되었다.<사기>의 기재에 따르면 [릉묘는 축수층까지 깊이 팠고 상층은 견고화시켜 관을 놓을수 있으며 묘실벽에는 일월성신과 산천지형도가 그려져 있고 묘중에는 관저와 백관위차가 세워져 있으며 진귀한 진주와 보물로 가득찼으며 고분의 인어 기름으로 만든 등잔불이 켜져있으며 많은 암살무기들이 중요한 곳들에 설치되어 있어 수시로 도적들의 침입을 막을수 있다.]

2천여년의 역사적인 부식은 진시황릉의 최초 규모를 줄여놓았지만 오늘도 여전히 황제릉의 기백을 과시하고 있다. 1974년 중국 문화재 고고학 사업자들은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키로미터 되는 곳에서 세개의 대형 병마용 구덩이를 발굴해 냈다. 이 세 구덩이는 도합 2만여평방미터로서 도자기로 된 병사와 말 거의 8천점과 목제 전차 100여대, 청동병기 4만여점이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7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37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안에는 금은보화가 쌓여있고, 각종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도굴범들의 약탈을 막는다고...그정도면 어떤 규모의 무덤이 만들어졌을지...무덤 공사에 동원된 인력들은 진시황릉의 위치를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모조리 생매장했다는 설까지 있다.

 

진시황릉은 1987년<세계문화유산명록>에 수록되었다.

위성 사진이나 탐사로봇에 의해서도 이 야산 아래에는 대형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이 들어 앉아 있다고 한다. 한 개인의 무덤 중에선 세계 최대의 규모라고....

 

진시황릉과 병마용 관광을 마치고 저녁을 현지식으로 먹었다.

밥은 고추장에 비비고 소주를 반주로 하면 대충 잘 먹는다.ㅋㅋ

저녁을 먹은 후에 장한가무쇼를 감상했다.

원래 일정표에 30불짜리 섬서가무쇼가 있는데 그것은 실내쇼이고 여산과 화청지를 배경으로하는 장한쇼가 좋다고 가이드가 살살 꼬셔서 50불짜리를 보기로 한거다. 둘다 봐야 비교가 되는데....

 

여튼 규모와 사운드와 조명이 어우러져서 감탄하기 좋아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딱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안록산도 나오고...다 아는 얘기다.

조명을 써야하기때문에 어두어져한다. 우리는 8시반부터...(상좌)

분수를 막으로하는 쓰는 레이저쇼..(상우)

여산 전체에 조명이 켜지며 다시 한번 감탄..(하좌)

불과 물이 어우러지는 대형쇼였다.(하우)

비디오로 보여줘야하는데 사진으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어 아쉽다.

70분의 공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한다.

으.....피곤해....

 

----To be continued-----